심슨과 오순절주의
2012-04-06 14:55 l 교회연합기자 epnnews@empal.com

심슨과 오순절주의


오순절의 유래를 연구한 데이턴(Donald W. Dayton)은 심슨의 기독교연합선교회의 교리는 성결-오순절 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오순절이 주장하는 구원, 성령세례, 신유, 재림의 네 가지 테마는 “순복음”(the full gospel, the whole gospel)의 제하에, 그 신학적 해석에서는 다소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복음의 네 가지 면을 강조 하였다. 그 예로서 오순절 교회들(Pentecostal Churches), 사중복음 국제교회(The International Church of Foursqoaregospel), 하나님의 교회(The Church of God), 선교 교회 (Missionary Church Associate), 기독교 연합 선교회(Christian Missionary Alliance)이다.
심슨과 오순절주의와의 관계는 당시에 일어났던 성령세례에 대한 이슈들 가운데에서 뉴앙스는 달리하지만 관련이 있는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다. 심슨은 1895년부터 1896년 까지 성령에 대한 설교에 2년을 바친 결과 두 권의 책인 ‘성령’(The Holy Spirit)과 ‘위로부터 내리는 성령’(Power from on Higher)을 출판 하였다. 이 속에서 특히 ‘위로부터 내리는 성령’(Power from on Higher) 속에서 한 장을 예수 자신의 세례 받으심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한 후에 성령세례와 거기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결과들에 대해서 논한다. 그 다음에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를 성령세례에 의해 구별되는 두 종류의 기독교인 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즉 “오순절 이전의 사도들과  오순절 이후의 사도들이 이러한 상징의 차이”라는 것이다. 파운드의 비유는 “봉사를 위한 오순절 능력의 부여”를 가르치는 것으로 해석 한다.
심슨의 사역이 시작할 즈음에 미국 속에서는 오순절 성령 세례주의의 확산이 있었다. 1858년 부흥이 미국의 기독교적 “대각성”으로서의 마지막 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미국의 전(全)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은 상항 가운데 완전하고 자의식적인 오순절 성화론을 발전 시킨 최초의 책들은 1857-1858년의 부흥에 뒤이어 나타난 것이 분명하다. 팔머는 1859년에 ‘아버지의 약속: 등한이 여겼던 마지막 날의 특별한 은혜(The Promise of the Father: Neglected Speciality of the Last Days)’를 발간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요엘의 예언을 상기 시키면서 늦은비 운동을 개진하여 여성의 사역을 변호 하였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오순절에 관한 테마를 반복 하면서, “현 삶에서 체험되고 만끽되어야 할 은혜인 충만한 성령세례에 대한 인식은 메더디스트의 특징적인 교리였다”라고 말하면서 오순절 기사인 특정적인 어휘인 “능력”에 대한 관심과 “예언”등이 새롭게 창조되고 있다. 
팔머의 뒤를 이어 오벌린 대학 학장 이었던 마한이 저술한 ‘성령세례(The Baptism of the Holy Ghost)’라는 제목의 책이 이를 더욱 발전 시겼다. 마한은 이 책에서 “온전한 성화교리는 옛 형태로, 또는 새로운 형태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 하였다. 그러나 마한의 신학은 메도디스트(감리교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개혁주의적 이라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세례”의 결과를 주로 “영원성”과 “능력”이라는 의미로 기술하고 있다. 이를 확대해 보면, (1) “우리의 자연적 능력에 대한 각성”, (2) “인내하는 일을 성취할 수 있는 도덕적이고 전신적인 능력을 주는 것,” (3) “진리에 대한 영적인 이해,” (4) “소망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 (5) “성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보다 친밀한 교제,” (6) “깊고 영원한 영적인 축복,” (7) 신자 간의 “영의 하나됨”으로 묘사한다.
1870년에 이르러 미래의 발전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 교리에 대한 결정적인 설명서들이 메더디스트와 장로교에서 출판된 것이다. 이때부터 오순절 성령 세례론은 늘 똑같은 형태로는 아니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보수적인 부흥운동파의 중요한 부분으로 차지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오순절 성화론으로서의 변화가 있었다. 남북전쟁 후에 성결운동은 점점 온전한 성화에 대해 오순절 공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성결운동의 가장 중요한 기관은 1867년 7월에 뉴저지의 바인랜드(Vineland)에서 첫모임으로 시작한 성결운동을 위한 전국캠프미팅협회 였다. 이 미팅의 참석자의 대부분은 메더디스트 였으나 초교파적인 모임이었다. 이런 영적인 모임 가운데 심슨의 이름이 거론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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