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들-임 영 천 목사
2014-05-29 16:19 l 교회연합기자 epnnews@empal.com

자기만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들



무릇 목숨을 지닌 이가 그 목숨[生命]에 위태로운 일이 일어났다고 느끼는 순간 살아 보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비록 타인의 목숨이지만 그 생명에 위태로운 사태가 발생했다고 느끼게 되면 남[他人]이라도 그 위기의 목숨을 건져주기 위해 몸부림치게 되는 일 또한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만큼 생명은 ‘나’와 ‘남’을 가릴 것 없이 귀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의 순간에, 나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 양자를 겸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 세월호 대참사의 경우에서 볼 수 있었듯이 남의 생명은 살리고 자기의 목숨만은 불가피하게 버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이야기가 우리의 심금을 울려준다.
대표적으로 승무원 고(故) 박지영(22) 씨의 경우이다. 476명의 승객들 중 사망?실종자 304명을 제외한 나머지 172명이 탈출에 성공해 자신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가정컨대 박지영 씨가 다른 생존의 승무원들처럼 요령 있게 처신했더라면 자기 목숨쯤 살리는 일이 전혀 불가능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박지영 씨는 자신의 신분이 승무원임을 잊지 않았고 또 승무원은 배가 침몰하게 된 순간 자신의 살 권리보다는 남[승객]을 살릴 의무가 앞선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고 이를 실천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그의 그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박 승무원은 예수께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 15:13).”거나, 또는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下)”고 말씀하신 바를 몸소 실천했다고 보아진다. 그가 한(1) 승객의 목숨이라도 더 건지려고 몸부림친 그 자세와 정신을 오늘 우리가 ‘의사자’니 ‘의인’이니 하고 부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박 승무원의 반대편에 그와는 전혀 다른 자세의 승무원들이 더 많이 있었다. 이준석 선장을 위시로 한 다수의 승무원들이 기울어가는 선박 안의 승객들은 그냥 놔둔 채 성급히 퇴선하고 말았던 것이다. 과연 이럴 수도 있는가,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이었다.  그들은 승객을 살리려는 시도는 해 보지도 않고 자신들만 살려고 날뛴[몸부림친] 자들이 돼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자기 목숨들만 구걸한 누추한 자들로 우리에게 인상지어져 있다. 요즘 검찰이 이들을 모두 법정에 세워 재판 받게 하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마10:39上)”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차제에 다시 한 번 상기해 볼 일이다.
그런데 이(李) 선장과 일군의 승무원들 못지않게 우리에게 추하게 느껴지는 자들이 더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려 3백 명 이상의 승객들을 수장시킨 세월호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청해진해운의 유병언(73) 일가 사람들이다. 그 자신과 장남?차남 등 실세(實勢)의 부자(父子)들이다. 그 많은 사람들의 아까운 생명을 수장시켰으면서도 자신들은 법정에 서는 일조차도 거부하려고 한다. 혐의자로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으면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인식 하에 수사를 받고 재판에 임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들은 아예 국법이나 모든 관습을 무시하고 일군의 추종자들에 둘러싸여 도피행각만 일삼고 있다. 우리가 보기엔 ‘자기만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들’의 추태로 보일 뿐이다. 남들은 다 죽여 놓고 자기들만 살려고 몸부림쳐서야 될 일인가. 참으로 추한 일이다 못해 치졸한 일이다.
그들은 혹 억울한 일이라고 자신들을 변명할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이 억울한 일인지 법 앞에서 자신(들)을 석명해야 할 것이다. 혹 그들이 세간에 알려진바 어떤 유파(구원파?)의 기독교도라고 한다면 기독교도로서의 최소한의 희생정신은 발휘해야 한다고 보는데, 도대체 이게 무엇인가. 예수의 사랑과 희생정신이 그들의 어디에 보이는가. 그들이 이단 또는 사이비 기독교도라는 악평을 듣지 않으려면 무언가 그에 걸맞은 행동과 결실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유병언과 그 추종자들의 행태를 보면서 잠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과거 황우석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과학적 사기’라고 하는 평가가 내려졌던 황우석 사태 때도 그 추종세력이 매우 많았지만, 이는 알고 보면 무슨 신념이나 믿음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고, 투자한 재물이 아까워서였던 것이다.  
유병언을 감싸고 도피시킨 추종 세력도 알고 보면 무슨 신앙이나 기독교정신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추종자)들이 그 단체에 투자한 재물을 잃게 될 일이 두려워 그를 그렇게 감싸고 보호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유)와 그 종교 단체의 운명도 이미 부도 난 것이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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