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자’ 또는 ‘공익신고자’
2014-10-24 16:38 l 교회연합기자 epnnews@empal.com

‘내부고발자’ 또는 ‘공익신고자’


근래에 내부고발자라는 말이 상당히 들리는 편이다. 황우석 사태 이후에 이 말이 더 실감 있게 쓰이게 된 것도 같다. 소위 내부고발이 없으면 어떤 비리나 비위(非違)가 밝혀지지 않고 묻혀버리는 수도 많아서 이런 행위(고발)에 의존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이 일을 기다리는 측도 없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검찰 같은 데서 이런 문제에 관심이 더 많지 않을까 짐작해 볼 수 있다. 어떤 비리 사건의 해결에 결정적 증거를 제공해 주는 이(고발자)를 기다리는 것은 그들의 직업 성격상 불가피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은 일반 국민들도 내부고발자가 있어야 그래도 사회가 바로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졌다고 보겠다. 이미 수년 전 <내부고발과 윤리경영>이라는 제목의 저서까지 나와 있는 실정이 그 단적인 증거다.
<내부고발자>라는, 우리말로 번역된 외국 영화가 상영된 적도 있었다. 그것의 원제목은 ‘The Whistle Blower’였다. ‘whistle blower’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호루라기 부는 사람’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야경꾼들이 이 호루라기를 잘 불었었다. 또한 통행금지 제도가 실시되고 있었던 때는 경찰들이 이를 휴대하고 다니며 필요한 때 자주 불었었다. 그들이 호루라기를 부는 것은, 무슨 ‘피리 부는 소년’이 흥겨운 일이 있어서 부는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떤 경고를 발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 불었다고 보겠다. 이처럼 ‘경고’의 의미로 호루라기를 부는 이, 더러 쓰는 다른 말로 표현해, ‘정의의 파수꾼’의 성격을 지닌 이를 우리는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라고 칭하는 셈이다.
이 말은 얼마 전 ‘공익신고자’라는 용어로 바뀌어 쓰이게 되었다. 내부고발자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가 좀 부정적으로 들리는 수도 있어서 정부에서 이 새 용어로 바꾸어 쓰도록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고발자’의 부정적인 어감이 ‘공익신고자’에 의해 많이 순화된 것도 같다. 이는 한때(5.18 당시) 광주-전남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쓰이던 광주민중항쟁이란 말을 정부에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바꾸어 쓰도록 하게 했던 사례를 연상시키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런데, 이미 ‘공익신고자 보호법’까지 제정되어 있다고 하는 오늘의 현실은 이 방면에 관한 국민적 관심과 호응이 의외로 커졌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최근엔 <제보자>라는 이름의 우리나라 영화가 나왔다. 지난 황우석 사태를 소재로 취한 작품이다. 제보자(提報者)의 사전적 의미는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어느 특정 집단의 비리나 비위에 관한 정보를 언론기관이나 사직당국에 제공(신고, 고발)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영화는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1백만 관객을 넘어서는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한다. 이 사태와 관련해 소위 공익신고자(내부고발자)로 알려진 이는 유영준 씨이다. 지금 모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전문직의 박사 신분이다. 그러나 그가 이런 위치에 이르기 전까지 그가 받은 심적 고통과 사회적 소외는 막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속칭 내부고발자로서 엄청난 반격에 직면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이 나오다 보니 문학계에서의 내부고발(자) 사례가 생각난다. 어느 원로 문학평론가가 한 소장 학자의 고발에 의해 그의 어느 논문이 일본 학자 모씨의 것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라고 지적된 바 있었다. 유력한 대학교의 교수이기도 했던 그 평론가의 문하생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그 고발자를 규탄했다. 그 결과 그는 어느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가 그 뜻을 다 펴지도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소장 학자의 그 제보(신고)가 의의 있다고 생각한 이들이 많았던지 그는 다른 대학에 가서 박사 학위도 받게 되고, 지금은 모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평론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음이 보인다. 말하자면 그는 일종의 사회적 보상을 받은 셈이라 하겠다.
지난 권은희 과장 사건도 유사한 사례라고 보겠다. 그가 확실한 내부고발자였는가 하고 묻는다면 반드시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면 대개의 경우 내부고발자는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편인데, 권 과장은 그 이름이나 신분이 이미 알려져 있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건의 수사 과정상 경찰내부의 일종의 비리를 같은 경찰 신분인 그가 고발(폭로)한 결과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보면 그 사건이 내부고발의 성격과 먼 거리에 있었다고는 판단되지 않는다. 그 결과 그는 일종의 보복 인사에 처해졌지만, 정치권에서 그를 보궐선거 후보로 끌어들여 유권자의 심판에 맡김으로써 결국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니, 그 역시 사회적 보상을 받은 셈이다.
요즘 문제가 된 김 부장판사 사건도 결국 오십보백보의 문제라고 하겠다. 그것은 권은희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건이다. 금번 김 판사는 법원 내부 비리의 한 갈래를 고발(폭로)한 셈이다. 그에게도 내부고발(자)의 보상을 받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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