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두려움”과 “걱정”
2014-11-27 17:46 l 교회연합기자 epnnews@empal.com

야곱의 “두려움”과 “걱정”


야곱이 형 에서의 복수를 피해 도망치듯 고향을 떠난 지 어언 2 십여 년,   이제는 나름대로 성공한 이민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자신의 배신으로 크게 상처를 준 바 있는 에서의 복수가 두려운 것은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얍복 나루를 앞에 두고 미리 엄청난 선물을 들려 평화사절을 에서에게 보내보지만, 돌아온 그들의 보고는 “두려움과 걱정”을 더해 줄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정보를 접한 에서가 지금 부하 4백 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치려고 오고 있다지 않는가. 그러나 파란 만장했던 야곱의 일생, 언제나 난국을 성공으로 이끌어왔던 야곱에게는 지금이 그의 협상 솜씨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3세기, 로마가 지배하는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었던 랍비 요나단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유대인이 아닌 외국의 왕이나 지배자를 요령 있게 다루기 위한 전략에 대해서 배우기를 원한다면 ‘야곱과 에서의 만남’을 다루고 있는 토라의 곳곳을 찾아 면밀히 연구해야한다.”
야곱이 에서와의 만남을 준비한 치밀하고도 주도한 계획들이 자칫 적으로 돌아 서게 할 수도 있을 위험한 상대와의 대면을 앞두고 전략을 짜는 과정에서 터득할 수 있는 아주 유익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회담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움직임 하나가 민족의 미래를 평화로 이끌어갈 수도 반대로 전면전으로 몰아갈 수도 있는 경우에서는 더욱 그러했다고 많은 유대인들은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역사, 구체적으로는 에서와 야곱이 대면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 토라를 해석하는 자세가 모두 같지는 않다는 사실도 매우 흥미롭다.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면 적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어떤 요구라도 수용하려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하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런 짓거리가 오히려 적의 야욕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들고 나서는 이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결론을 얻기가 쉽지 않는 것이 협상인 것을.    
그렇게 유대민족은 여러 세대를 이어가며 적의로 가득한 지배자와 회담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럴 때 마다 의례히 창세기 32장과 33장을 통해서, 소원해진 형 에서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위해서 준비하는 야곱의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유대인들은 역사적 시대마다에서 각각의 에서와 대면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바람직한 교훈을 찾아내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야곱이 남겨준 교훈을 맹목적으로 따르려 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히브리인의 기질이나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서 야곱의 결단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분명하게 비판하는 이도 없지 않았다. 랍비 중에는 야곱이 스스로를 “당신의 종”이라 칭하거나, 지나치게 호화로운 선물을 헌상해가며 형 에서에게 교태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에서에게 지난날 자신이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땅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허락을 구했다는 태도에 대해서도 야곱을 비판하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마다의 정치적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는 가를 야곱의 이야기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하고 야곱의 심정을 헤아리는 랍비도 있었고.   
창세기 32장 6절 이하. 친선사절로 에서에게 갔다가 돌아온 종들이 에서가 “지금 부하 4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어른을 치려고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 했을 때,”야곱은 너무나 두렵고 걱정이 되어서“하는 대목에서,”두려움“과 ”걱정“이란 단어를 자상하게 해석해서 야곱의 심정을 헤아려보려는 랍비들의 노력은 가상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눈물겹다.  
“두려움”이란 자신의 생명에 대한 것이었고, “걱정”이란 자신의 가족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불안이었다는 것. 그래서 야곱으로 하여금 “양 떼와 소 떼와 낙타 떼를 두 패로 나누어서 에서가 와서 한 패를 치면, 나머지 한 패라도 피하게 해야겠다는 속셈”을 차리게 했다는 것.
또 있다.”두려움’이 바깥으로부터 오는 공포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걱정”은 인간 내면의 고민을 나타내는 것이라 보고, 야곱은 에서와의 대결에서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했을 뿐만 아니라, 야곱 자신도 적대자를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걱정을 했다’고도 읽는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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