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한 뿌리
2015-01-30 15:48 l 교회연합기자 epnnews@empal.com

파 한 뿌리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 중에서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는, 곁가지들이 많아서 자칫 줄거리를 놓칠 수 있다. 그러나 놓칠 수 없는 재미와 교훈을 간직하고 있어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대심문관>이 그 대표가 될 것이나 <파 한 뿌리>라는 우화와 그 언저리도 만만찮은 재미를 제공한다. <파 한 뿌리>는 빼어난 미모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마성이 짙은 여인 그루셴카가 수도원에서 수도하고 있는 착하디 착한 알료샤에게 들려준 이야기인데...  
“옛날, 어느 곳에 몹시도 심술 고약한 할멈이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어버렸어요. 평생 선행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었기에, 악마가 그녀를 잡아 불바다에 던져 버렸지요. 그래서 할멈의 수호천사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요. 할멈의 선행을 기억해내서 하나님께 아뢸 수는 없을까 하고. 문득 한 가지가 떠올라서 하나님께 말했어요. ‘저 할멈이 파 한 뿌리를 뽑아서 거지에게 준 일이 있습니다.’ 하고.
하나님이 천사에게 대답했어요. ‘그렇다면 파를 가져다가 불바다에 내밀어서 할멈이 그걸 붙잡고 빠져 나올 수 있게 하라. 만약 그녀가 기슭까지 올라오면 천국으로 가게해 줄 것이나, 파가 끊어지면 지금 있는 곳에 계속 머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천사가 할멈에게 달려가 파를 내밀며 ‘할멈, 어서 붙잡고 나와요’하고 말했지요. 천사가 조심스럽게 파를 잡아당기기 시작하는데, 거의 다 끌어올렸다 싶었을 때, 불바다의 다른 죄인들이 할멈이 올라가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함께 그곳을 벗어나려고 너도나도 할멈에게 매달렸어요. 심술 사나운 할멈은 두 발로 차기 시작했지요. ‘나를 끌어올리는 것이지 너희들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야, 이건 내 파지, 너희의 파가 아니란 말이야.’하고 소리 지르는 순간, 파는 끊어지고, 할멈은 다시 지옥에 떨어져 지금까지 고초를 겪고 있답니다. 천사는 눈물을 흘리며 그곳을 떠났고요.”
그루셴카는 알료샤에게 자신이 바로 우화에 등장하는 심술궂은 여인이라 자인하면서 말한다. “...평생을 통해서 나는 고작 한 뿌리의 파를 적선했을 뿐이라오... 그렇다고 나를 칭찬하지는 마세요... 잘 들으세요. 일료샤, 난 너무나 당신을 우리 집으로 유인하고 싶어서 라끼뜨가에게 당신을 내게 데려오면 25루블을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
그러니까 그녀가 제공한 ‘한 뿌리의 파’는 알료샤를 자기 집으로 데려다주는 보수였다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짐승 같은 여자인지 알게 될 명백한 진실 한 가지를 말씀 드리죠... 난 당신을 파멸시키고 싶었어요... 당신을 데려오도록 라끼뜨가를 매수할 정도로요. 그러면 왜 그토록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요? 당신은 나를 멀리해왔어요. 옆을 스치면서도 눈까지 내려 깔고 있었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수없이 관찰했고... 당신의 얼굴은 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았어요. ‘저 사람은 나를 경멸하고 있어 나를 거들 떠 보려고도 하지 않으니’하고 생각했던 거죠. 그리고 내가 왜 저런 풋내기를 두려워하는 걸까? 그를 완전히 집어삼켜 비웃음거리로 만들어야지 하는, 나 스스로도 놀랄 그런 감정에 빠져 들고 말았어요.”  
자신의 처절한 심정을 토로하고 그루셴카는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알료샤는 그녀의 집을 나선다. 늦은 시간에 수도원으로 돌아온 알료샤는 조시마 장로의 관 앞에 엎드린다. 아버지와 같이 따르며 존경해오던 그분이 누워있는 관 앞에.  
피곤을 이기지 못해 깜빡 졸고 있는 데, 빼이시 신부의 독경소리, “요한의 복음서 2장,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의 대목을 듣는다. 어느덧 자신이 그 잔치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어디선가 조시마 장로의 조용한 음성이 들려온다. “사랑하는 자는 그들의 기쁨도 사랑하는 법이니라...”  
“그를 향해 다가오는 그분, 여위고 잔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띠운 노인... 대체 어찌 된 일일까. 장로님께서 잔치에 참석하고 계시다니, 틀림없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신 모양이야”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조시마 장로가 입을 뗀다.
“사랑하는 알료샤, 나도 초대를 받았단다...왜 놀라지? 나는 파 한 뿌리를 적선했고, 그래서 이 자리에 있게 된 건데. 이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도 단지 파 한 뿌리씩, 단지 조그만 파 한 뿌리씩을 적선했던 사람들이란다...우리가 할 일이 무얼까? 조용하고 온순한 내 아들아, 이제 네가 할 일을 시작하렴. 착한 아들아...네 눈에도 우리의 태양이 보이느냐, 그분이 보이냔 말이야?”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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