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우상, 황금우상, 권력우상-임 영 천 목사
2015-02-06 10:23 l 교회연합기자 epnnews@empal.com

형상우상, 황금우상, 권력우상



구약의 출애굽기에 십계명이 나온다. 제20장(3~5절)에 십계명의 첫째와 둘째가 기록되어 있다. 제1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제2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이 계명을 받은 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시내산 정상에 오르게 되는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모세)의 귀환이 더딤을 참지 못하고 금송아지 상을 만들어 거기에 제사를 드리고 경배하였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한 제2계명은 물론,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한 제1계명, 이 모든 것을 범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금송아지 상은 우상이었으며, 거기에 제사 드리고 절한 일은 그 우상을 신으로 섬겼음을 말해준 것이라 하겠다.
모세의 처지에서 보면, 우상 없이(곧 우상을 만들지 말고) 자기를 기다렸어야 할 백성들이 그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린 것이다. 이를테면 “우상 없이 기다리라”(Wait without Idols)고 했는데도 결과는 그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셈이다. 우상이 그만큼 깊숙이 백성들에게 뿌리 박혀 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요즘 개인의 운을 점쳐주는 점집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는 사실도 그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우상에는 아세라 목상과 같이 물질적으로 가시적인 형상을 지닌 것이 있고, 금송아지와 같은 높은 값어치를 지닌 황금우상도 있으며, 또 인간 중심의 권력우상이란 것도 있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마지막의 권력우상에 대하여 우리의 관심이 최근 많이 기울어져 가는 편이다. 점집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 이상으로 권세가(권력자)의 근처엔 사람들이 많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이때의 ‘권력’에는 세속권력 못지않게 교회권력에도 동일한 관점에서 살펴볼 만한 면이 없지 않다. 그래서 권력우상은 도처에 출몰한다.  
모세는 하나님이 인정하신 참 지도자였는데도 목전의 이해관계에 밝았던 다급한 백성들은 “우상 없이 기다리라”고 한 그(모세)의 간곡한 요청도 저버리고 형 아론과 합심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였다. 백성들은 참 지도자를 기다리는 일에 매우 둔하고 반면 조급하였다. 고작 40여 일을 기다리는 일에도 초조하였다.
그 때문에 아론과 같은, 하나님의 참 뜻이 무엇인지, 또는 모세가 맡아가지고 자기들에게 전해줄 하나님의 말씀(두 돌판)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런 판단도 없이 군중의 비위를 맞추는 일에만 무비판적으로 편승하는 이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때 아론은 일종의 권력자가 되어 있는 셈인데, 이는 백성들의 황금우상과 연합하여 그 우상(권력우상) 자리를 얻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아론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제사장 계급이 권력자들로 부상해 예수 시대에 와서 산헤드린의 최고위(수장)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는 대제사장의 무리를 예수께서 꾸짖으신 것은, 달리 표현해 보자면, 이 시대에 와서 “모세”와 ‘아론’이 “예수”와 ‘대제사장’의 위치에서 상호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신약 시대에 와서 베드로의 처지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고찰해 볼 수 있는 특유의 인물이다. 그는 예수의 언필칭 수제자였다. 그러나 그가 목포하고 있는 것은 예수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하고 제왕이 되었을 때 그의 그늘 아래서 유력한 재상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예수께서 무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자 그는 모든 기대를 저버려야 했다. 그 결과 그는 세 차례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할 수밖에 없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를 세우고 관리해야 할 처지에 이르렀을 때 그는 일종의 교권주의자로 변해 있었다. 권력우상에 얽힌 교회권력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뒤에 그가 이 모든 잘못을 회개하고 예수의 참 제자로 변화하게 되었을 때 그의 앞에는 예수께서 먼저 가신 ‘십자가’의 길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게 예수님의 참 제자의 길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로마교회는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삼는다고 한다. 모르기는 하지만, 베드로의 마지막 십자가 길로 대표되는 순교자로서의 베드로를 교황의 모델로 보았기에 그를 초대 교황으로 삼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가 교권주의자로서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 권세를 부리고 있었던 때의 그의 상을 모델로 삼아 초대 교황으로 삼지 않았나 싶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그 기준은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그 길만이 가톨릭 교황제도가 권력우상에서 멀어져 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교황의 모습으로 만인 앞에 되살아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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