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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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산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가던 백성들이 만나 먹기에 지쳤고, 그들의 기력이 날로 쇠하여 졌다면서 고기를 달라고 울면서 모세를 원망한다. 이들의 우는 소리를 들은 모세는 이 백성들의 짐을 혼자 지기에는 너무 무겁다며,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차라리 자기를 죽여 이 백성들의 악한 꼴을 보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이 때에 여호와께서는 백성의 장로들 중 70명을 모아 그들을 장막에 둘러서게 하였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구름에 휩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칠십명의 장로들에게도 주시자, 그 영이 그들 위에 머물때에 그들이 예언하였으나 다시는 하지 않았다. 이는 분명 여호와께서 모세의 동역자를 세우는 임명식, 혹은 위임식임에 틀림없다. 모세에게 주신 똑같은 영을 이들에게도 주심으로 이들이 모세와 일체성을 가지고, 모세가 맡았던 것과 같은 일, 즉 여호와의 백성을 돌보는 목자나 어미와 같은 일을 하게 하고, 이것을 사람들이 보고 인정하도록 하시려는 것이었다(12). 70명의 부름받은 장로들은 모세에게 임했던 그 영이 그들 위에 머무를 때에 예언하였다고 했다. 여기서 예언하다는 말은 히브리어 나바”(אבנ)를 번역한 것인데, 성경에는 많은 경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있었던 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 혹은 미래에 있을 일을 그의 선지자에게 알려 주고 그를 대신 하여 그의 백성에게 말하고 가르치라고 하신다. 따라서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의 종, “나비”(יאיבנ)예언자라고 번역하고 이해하는 것보다는 대언자혹은 선지자라고 하는 것이 나비”(יאיבנ)의 본 뜻을 이해하는 데 혼란을 피할 수 있다. 여기서 70명이 회막에 둘러서서 무슨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겠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정확하게 그것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이 나바”(אבנ)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만을 대언하는 것은 아니고 선지자적 행동”(prophetic action)이라고 지칭하는 특이란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울처럼 누워서 황홀경에 빠져드는 경우도 있고(삼상 19:23-24), 이사야처럼 알몸으로 사는 경우도 있다(20:2). 따라서 선지자는 다양한 형태의 언행을 통하여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세우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 곧 선지자임을 나타내 보여줄 뿐 아니라, 그의 이러한 행동이 앞으로 있을 그의 반역적인 백성에게 내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상징적으로 선포한다.
그런데 원래 이 70명의 명단에 들어 있었던 엘닷과 메닷이라는 두 장로는 회막에 나가지 않고 그들의 진영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곳에서 예언을 하였다. 이것을 안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이들의 행위를 금하도록 청하였는데 모세는 오히려 여호수아를 책망하며, “여호와께서 그분의 영을 그의 백성에게 주셔서 모두 선지자가 되게 하였으면 좋겠다.”(11:29)고 말한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세우신 이 70명의 장로들은 실상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세우신 것이며, 이들은 앞으로 여호와의 율법과 계명을 가르치며 훈련시키는 모세의 말씀 사역을 도울 동역자인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이 70명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다 선지자 역할을 하기를 바라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실 때에 이스라엘을 그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19:6),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의 영을 부어 주어 그들이 예언하게 하여 그의 선지자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은 이 언약과 일맥상통하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선지자적 사명이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선지자 요엘은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줄 것이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하고, 늙은 이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게 될 것이다. 그날에는 내가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내 영을 부어 주실 것이다.”(2:28-29)라고 적고 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날에 있을 일을 말씀하신 것으로 그때에 여호와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영을 부어 주어 그의 자녀들이 예언하게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선지자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보내주신 성령을 받고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했다.”(2:4). 여기서 다른 방언들이란 다른 언어들”(τραις γλσσαις, other languages, ESV)이라고 번역해야 정확하다. 왜냐하면 이는 분명 다른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각각 자기 나라 말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자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다.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역사가 자칫하면 한 순간에 술주정벵이들의 술타령으로 인식될 위기를 맞은 것이다. 이때 베드로가 일어나서 자기들이 술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로서 예언을 하고 있다고 변증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베드로는 요엘서를 인용하는 데(2:17-18), 여기서 베드로는 요엘서에서 언급되지 않는 그들이 예언할 것이다.”라는 구절을 마지막에 첨가하고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실 것이며, “그때에 그들이 예언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바로 베드로의 요엘서에 대한 해석이요 적용으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 예수님의 제자, 자신들을 가르키고 있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영을 부활하신 예수께서 보내주셨다는 것을 길게 설명한다. 따라서 소위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라고 칭하는 베드로의 연설은 베드로의 선지자로서의 자기 변증이다.
구약성경에서는 선지자를 피 아도나이”(הוהי יפ), 여호와의 입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세우고 보내실 때는 그의 손을 선지자의 입에 댔다 (1:9; 6:7). 선지자에게 그의 말씀을 대언하는 그의 입이라는 것을 인치시는 것이다. 마치 너는 내 입이다.”라고 안수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오순절에 보혜사 성령이 임하실 때도 불과 같이 갈라진 혀들이 제자들 위에 임했고, 제자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성령이 그들의 입을 여시고 말하게 하신 것이다. 이 때에 불이 임한 것이 아니고 불과 같이 갈라진 혀들”(διαμεριζμεναι γλσσαι σεπυρς)이 임한 것이다. 이는 분명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을 새언약의 선지자로 세우시는 위임식임에 틀림없다. 이 오순절의 성령세례 사건은 마태복음 28:16-20 이나 누가복음 24:46-48에 기록된 사건에 연이은 사건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이들을 새언약의 선지자로 임명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이들을 인치시고, 이를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백성들 앞에 공포하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세는 그의 백성이 모두 예언하는 선지자가 되기를 원했다. 요엘은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영을 받고 예언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보내주신 성령을 받아 예언하는 선지자가 되었는 데 세상 끝날까지 모든 족속을 제자 삼는 일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모두 선지자가 되어 예언,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예언이나 방언그리고 성령세례에 대하여 바르게 번역하고, 해석하며,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우리는 모두 말씀을 가르치는 선지자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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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 번역,바른해석, 바른적용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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