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1.jpg
 무더운 찜통더위가 어느 해 보다 지루하게 기승을 부렸다. 그리고 한 순간에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과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 간다. 홍만표와 진경준 그리고 우병우의 비리와 부럽 사실들은 국민과 서민 대중 그리고 하루벌이에 온 몸의 에너지를 소진하는 민중들에게는 분노와 울분을 넘어 서서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의심하게 하는 좌절과 절망을 절감하기에 넘친다. 성완종의 의문의 자살과 이인원 롯데 그룹 2인자의 사회와 기업들 고위층들의 비밀 은폐와 총수 살리기 등의 자살은 이 사회의 많은 비극이 도사려 있다.
특별 감찰관 이석수의 어이없는 사표와 빈집 압수 수색, 우병우의 종합 비리 민정수석을 끝까지 감싸고 지키려는 알 수 없는 의문과 그렇게 하난가 되어 정권 유지를 위한 갖은 야합을 해 오던 조선일보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죽이기와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싸움, 권력과 언론의 야합과, 권력과 언론의 죽이기 등을 보며 한국 사회의 현 주소를 본다.
조선해운 특히 한진해운을 둘러 싼 해고의 열풍이 예산 된다. 이 사회의 비리와 갈등, 부정과 부패, 불의와 불법은 날이 갈수록 깊은 늪 속에 빠져 간다. 부자와 빈자의 골 깊은 양극화, 금 수저와 흙수저의 평행선 남북의 분단과 동서의 분열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사회적 분열 현상 등 우리의 모순은 산 같고 바다 같다.
이러한 사회 현실 앞에 한국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만 되는가? 교회는 이러한 모순과 부정의 앞에서 정의와 평화 사랑과 희망을 선포할 수 있는가? 교회 안의 비리와 성적 문란과 교회 안의 분열과 가정의 해체가 증가 되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그래도 쉬지 않고 복음을 외쳐야 한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복음의 진수와 진면목이 있어야 하고 복음의 능력이 발휘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교회 안에 복음에 대한 능력은 있으며, 어떤 복음을 외쳐야 하는가? 오곡이 무르익어 농부들의 땀과 하늘이 주는 자연의 은총으로 먹을거리는 넘쳐 난다. 자연도 사람들의 노력도 위대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있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더욱 위대하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 교회 현실은 기본적 삶의 가치와 윤리와 도덕의 기초마저 허물어 지고 있다.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과 회개는 고사하고 거짓과 변명과 합리화로 일관 하고 있다. 총회의 공금을 횡령 하고도 그것에 대한 뼈저린 참회는 고사하고 교권의 힘과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으며, 교권의 구조악을 청산하는 데는 무관심하고 그 교권의 세습을 위하여 갖은 권모술수와 추악한 방법들을 동원 한다.
교단의 총회는 거룩한 성회인가? 덩치가 커지고 물질과 조직이 커진 교단들이 세속 정치판을 그 대로 답습하는 흉내를 내거나 한 술 더 떠서 축적 된 돈을 소비하기 위하여 안달이 난 듯 하다. 각 교단의 임원 선출을 위한 후보들의 난립은 가히 춘추전국 시대와 같다. 더민주의 대표를 뽑는 전당 대회를 방불케 하는 뜨거운 공청회와 선거전 양상이다. 한국 교회의 상실된 거룩한 장소와 거룩한 시간을 어디서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우리의 내일을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보면 내일에 대한 예측은 충분하다. 규모에 상관없이 시간과 물질을 허비 하고 그 시간과 에너지를 통한 기도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임원 후보들 간의 인신 공격적 네거티브가 서로의 존재와 본질을 왜곡시킨다. 권력의 속성은 필요하면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거나 없애는 잔인함이 있다. 교회의 교권도 그와 못지않다. 과거 중세의 가톨릭의 종교 재판소를 통한 교권의 잔혹성과 오늘 날의 교권은 겉모습은 다르지만 잔인하고 추악한 모습들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성과 속의 차이를 무엇으로 가릴 수 있는가? 임원에 입후보를  하고자 하면 우선 막대한 후보 등록금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돈이 없는 목사나 장로는 후보 자체를 단념해야 한다. 거기에 선거 운동비가 막대 한다. 적어도 1억에서 수억원이 들며 큰 교단들은 수십억이 소요 되고도 당선 되지 못한 사례들이 있다.
가끔 교단과 노회들의 송사가 있다. 그 때 나오는 논쟁들이 교회 안에서 아니면 교단 안에서 그 문제를 풀어야지 세상법이나 법정에서 다투는 것은 기독교적이 아니다거나 성서적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잘잘못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문제를 정의롭고 공평한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 혹은 교회법을 잘 적용하느냐의 문제는 그렇지않다라는 결론이다.
지금은 성과 속을 가릴 수 없는 혼돈의 세계에 산다. 신과 종교의 이름으로 우리의 거룩을 회복하기가 매우 어려운 자업자득의 현실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교회의 직분은 섬기는 직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누구를 통치 하거나 다스리는 권력이나 벼슬이 아니다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역사와 교회 공동체 앞에서 정직해야만 한다. 이 시대 한국 현실에서 진정한 복음의 역사가 희망적 창조를 이루려면 한국교회가 먼저 정의가 바로 서는 사랑의 실천이어야 한다.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9월 총회와 한국교회-홍 성 표 목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