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본고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김경원 목사)가 지난 9월 6일 서울 연지동 연동교회에서 연 제34차 열린대화마당 ‘종교개혁 500주년, 한국교회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할 것인가?’에서 이세령 목사가 발제한 ‘한국교회 개혁의 방향’을 일부 발췌한 글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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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교회 일치,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이명증은 공교회성을 나타내는 작은 실체이다. 주님의 교회가 서로 서로 연결되었음을 확인하는 표이다. 그런데 이런 것을 무시하고 기형적으로 자라가는 대형교회들은 복음의 질서와 교회의 질서를 경멸한 것이다. 이런 형태의 교회들은 개교회주의라는 고질적 질병 속에 있게 된다. 이런 교회들이 다른 교회들과 하나가 되고 배려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물질적인 지원을 말하지만 사람이 없는 곳에 물질의 지원은 의미가 없다. 참된 배려는 함께 서는 성도들이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성장이 목표가 된 교회는 개교회주의로 가고, 이런 교회들은 하나가 되기가 어렵다. 서로 자신의 성공과 성장을 인정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성공한 교회 목사들의 명예 욕심과 교단들의 집단적 권리주장 때문에 일치를 이루기가 매우 어렵다. 자신이 교계에서 인정을 받는 유일한 길은 성장한 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대형 교단들은 자신들의 힘을  포기할 줄 모른다.
개교회주의적인 현상은 섬김마저도 개교회적인 방식으로 진행한다. 천주교회의 방식과는 아주 대조된다. 절대적으로 많은 섬김의 사역을 함에도 불구하고 개혁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교회들에게서는 공교회성이 결여된 형태의 모습을 본다. 교회들이 운영하는 복지 시설들이 건강하게 운영되는가를 질문할 때 긍정적인 답이 어렵다.
한국교회가 공교회성을 회복하고 일치와 연합을 이루는 길은 이명증을 주고받는 가장 기본적인 일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로를 복음을 가진 교회로 여기면서 협력해야 한다. 특정 교회가 성장을 배경으로 교회 연합 기구에서 실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결코 연합운동은 생명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교회연합운동이 마치 소위 성공한 목회자들의 놀이터처럼 여겨지는 경우는 없는가? 공교회의 근거인 복음에 충실함이 교회적 일치와 연합을 이루는 근간이 된다.

9. 창조를 회복하기 위한 의와 공평의 복음: 선한 세상에 대한 소망
성공과 성장을 추구하는 교회는 종말적인 소망을 바라보면서 나그네로 사는 성도의 삶을 바라보기도, 보여주기도 어렵다. 거룩한 삶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로 창조의 회복이란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 의와 공평의 복음을 들고 선한 세상,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지향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경제적 양극화, 인구 절벽, 남북의 갈등과 함께 이념적인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런 사회적인 현상은 교회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목회자들의 생활비도 심각한 불균형을 보인다. 심지어 우리 사회의 최저 임금 기준도 보장받지 못하는 목회자, 교회의 사역자, 선교단체의 간사들이 적지 않다. 의와 공평의 복음이 삶의 다양한 자리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교회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

10. 가정에서 복음을 담아내야 한다: 가정 기도시간이 필요하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신실한 성도들의 식구들은 주일새벽이나 아침 집에서 헤어진 후에는 밤늦게 각자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주일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정은 보이지 않았다. 모든 신앙교육은 철저하게 교회의 몫이었다. 물론 불신가정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던 관계로 교회의 프로그램이 가정 중심적일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어쨌거나 예배의 날이 안식의 날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주일 밤 예배가 사라지고 주일 오후에 출석하는 교인들의 숫자가 주일 낮 참석자의 20~30%에 그치는 현실은 가정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할 것을 말해준다. 가정이 복음으로 충만해야 하는데, 우리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가정의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은 형국이다.
오늘의 교회는 가정에서 식구들이 복음으로 결속되고 유지되게 하는 일에 도움을 주고 있는가? 성도들이 교회에서 충성하고 봉사하도록 권고 받고 있지만 가정 기도회를 통해서 식구들 간에 사랑과 친밀함을 복음으로 확인하도록 인도하는 일은 썩 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정의 식구들이 각자의 삶에서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가도록 서로 격려하는 기도의 시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바쁜 도시 문화 속에서 교회당 중심의 신앙생활도 약해지고 있는데, 가정에서 기도로 격려하는 일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앞선 세대가 가졌던 가정예배 문화를 회복하여야 한다. 복음을 이해하고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서로 배우고 믿음의 대화를 나누고 함께 기도하면서 의와 공평의 복음을 담아내는 못자리 사역을 복원하여야 한다. 그것이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길이다.

11. 인구 절벽 상황: 낙태를 허용한 죄부터 회개하여야 한다
인구 절벽 앞에 서게 된 한국사회, 그 사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교회 모두 다음세대 문제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한마디로 다음 세대가 사라져가고 있다.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들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니다. 농촌교회의 주일학교 붕괴현상은 이미 오래되었지만 도시교회에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왜 그런가? 산업 발전기에 정부 정책에 따라서 산아 제한에 기꺼이 동조하면서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했던 노력의 결과이다. 물질적 성공신화에 교회가 무비판적으로 동조했기 때문이다. 자녀를 얻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큰 축복이다. 생명의 복보다 귀한 것은 없다. 그런데 이런 참된 복을 예사로 여기고 물질적인 복만을 설교하고 가르치고 추구한 목사들과 교회의 잘못이 오늘 이런 결과를 빚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갱신은 생명을 경시한 것을 회개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영아살해 행위인 낙태를 방치하고 생명의 복보다 물질적인 축복을 더 사랑한 일을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경제적인 어려움, 양육의 수고를 회피할 목적으로 저출산 사태가 확산되는 오늘의 사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따라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번성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주어 다시 한 번 생명의 축복을 풍성히 누리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교회는 개인의 모임이라기보다는 가정이 함께 모이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초대교회의 중요 메시지였다. 가정에서 예배와 기본적인 양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세상적인 성공과 출세를 위한 교육에만 관심을 보일 것이 아니라 복음의 용사들이 되도록 양육해야 한다. 의와 공평으로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는 일에 부름 받은 사람들로 공부하고 일할 수 있도록 양육해야 한다.

12. 성도들의 거룩성을 높여야 한다
교회는 물질적 성공의 복음에 경도되면서 직분자를 세울 때도 소위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선호했다. 그들에게 온전한 복음을 가르쳐 주지 못했다. 죄를 회개하고 돌아서서 예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도록 가르치고 설교해야 진정한 복음의 사람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공평의 나라이다. 거룩한 나라이다. 힘과 경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의로움과 공평이 있는 성도로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이를 방해하는 죄의 세력들과 싸우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실패하였다.
오늘날 벌어지는 사회적 비리와 부정의 현장에는 교회의 장로들이 빠짐없이 함께 거론된다. 방산 비리, 성완종 리스트, 롯데 비자금 등 곳곳마다 신자들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복음은 거룩한 삶, 의로운 삶, 함께 살아가는 삶을 위한 동력이어야 한다. 이웃의 삶과는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성공만 추구하는 태도는 복음과 상관없는 일이다. 정직하게 세금을 납부하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아파하고, 불의와 구조적 모순을 제거하도록 싸우는 시민이 되게 하는 것이 진정한 복음이다. 복음으로 불의한 사회를 갱신하는 일이 종교개혁 500주년에 교회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13. 교회 내의 양극화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
오늘 한국 사회의 문제는 양극화로 요약된다. 부의 편중,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학벌의 차이가 소득의 차별을 심화시키는 현실, 대학 입학조차 부모의 소득수준에 의해서 결정되는 구조는 사회를 양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계층 간 이동 수단 역할을 해왔던 교육조차 기득권 세력이 독점하는, 닫힌 사회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교회 내부를 들여다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목회자들 간에도 사례비의 차이는 엄청나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최저 생계비도 보장받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에서 세상의 양극화 현상에 대하여 교회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목회자의 생활비가 평균케 하시는 복음(고후8:1-15)을 따라 주어져야 하지 않는가? 장로교 기장과 통합총회처럼 점진적으로 목회자의 최저 생계비를 총회적으로 보장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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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한목협 제34차 열린대화마당 ‘한국교회 개혁의 방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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