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본고는 지난 10월 27일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 공덕교회에서 열린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의 발표회에서 현해춘 목사가 발제한 ‘목회자 은퇴문화의 현실’을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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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마음을 알기위해서, 온 세상 사람들 모두를 만나보아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열고, 깊이 들여다보면 세계인의 마음을 다 알 수 있게 된다.” 어느 심리학자의 말이다.
제 자신이 40여 년의 목회를 마치고 은퇴를 경험하면서 은퇴가 가져다주는 상실감, 두려움, 고립감 등을 이해하게 되었고, 은퇴에 따르는 제반 문제들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활동에 따르는 영향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한 일들을 몇 가지로 요약해 보고, 목회자의 은퇴 현실과 은퇴 문화를 생각하며, 몇 가지 제안을 드리려 한다.

1. 은퇴 인구의 현황과 추세
은퇴란 개념이 생긴 것은 서구 사회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불과 100여 년 전이다. 농경 중심의 사회에서는 은퇴란 개념이 없었다. 왜냐하면 늙어 죽을 때까지, 가족들과 함께 생산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복지란 개념도 없었다. 가족구성체 내에서, 육아와 노후부양이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 되면서 나이가 들면,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우리사회도 1960년 이후 경제발전이 본격화 되면서, 산업화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역군들이 직장에서 퇴직하게 되면서, 은퇴란 문제가 사회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오늘의 은퇴현실은, 많은 사람들이 은퇴가 목전에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개가 경험 없이 준비 없이, 무방비 상태로 은퇴를 맞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알다시피 전체인구의 7%이상이 65세가 넘으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압축 고령시대에 들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통계청(2015b)의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2030년에는 우리나라 인구가 5,216만 명에 이르게 될 것이며, 2017년이 되면 65세 이상 인구의 비중이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비중이 2030년에는 24.3%로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2040년 우리의 기대 수명은 89.3세로 예측되고 있으며, 그야말로 우리는 지금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이것은 출생이후 사고로 죽지 않는다면, 누구나 100세를 살수 있는 시대에 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우현 박사의 은퇴학 개론.2016.6.3.)
2040년이 되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90세가 될 것이란 연구 결과가 나왔다.(성균관대 하이브리드 컬처연구소, 2040년 한국인의 삶의 질) 이런 연구 결과로 추산해 볼 때, 우리는 우리 할아버지 세대보다 30여 년은 충분히 더 살아야 한다. 엄청난 축복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런 귀한 선물을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황금 같은 시간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두려움 마저 느끼게 한다. 이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아야 하며, 여기 필요한 재화를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이 “돈 없는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라는 말을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런 문제들이 은퇴와 맞물려 일어나는 우리사회의 커다란 문제들이다.

2. 한국교회 목회자의 은퇴 현실
한국교회는 선교1세기 안에 1천만을 육박하는 거대한 교회로 성장해 왔다. 국민의 25%에 가까운 숫자다. 세계 선교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성장을 거듭해 왔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세계에서 큰 교회들이 한국에 등장해서 한국교회의 위상을 자랑해 왔다. 또한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한 만큼, 각 교단들은 저마다 목회자 양성에 붐을 이루었고, 수많은 목회자들을 길러냈다.
그러나 선교 2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는 성장이 급격히 둔화되고, 산적한 문제들을 않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교회의 많은 문제들 때문에 사회로부터 비난의 대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성직자의 권위가 실추되어 가고 있고, 목회자들에 대한 우리사회 인식이 달라져가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문제들은 말할 것도 없고, 더욱이 많은 은퇴 목회자들이 대책 없이 은퇴를 맞이하게 되는 일이 오늘 교회문제 중의 하나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교회 역사를 보면 초대교회는 목회자의 은퇴가 문제되었던 것 같지 않다. 사도들은 대개 순교함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복음 전도자들이, 그들의 노후를 시대의 환경에 순응하여 극복해 나가야 했다.
가톨릭교회 시대는 신부와 수녀의 독신 제도로 성직자의 노후 문제는 별로 관심사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개혁교회 안의 목회자 은퇴문제는, 교회가 사회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선진 기독교 국가들은, 공무원의 공적 복지제도에 준하는 제도적 균형으로 이어져, 목회자도 어느 정도 사회적인 밸런스가 유지되어온 실정이지만, 한국교회의 목회자 은퇴문제는 대책없이 여기까지 밀려 왔다.
많은 은퇴 목회자들이 공적연금 제도나, 복지 혜택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은퇴 후의 삶을 나름대로 준비하거나, 대책 없이 맞이하게 된 것이다. 어떤 목회자들은 유복한 부모의 유산을 받거나, 성공한 자녀들의 경제적 도움을 받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예는 그리 많지 않은 형편이다.
또 하나의 경우는 은퇴 이후, 은퇴이민 신청을 하여 멀리 떠나거나, 귀농, 귀촌을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노후에 갈 곳이 없어, 여기저기 방황하거나, 반퇴를 해야 하는 경우와, 다양한 노후 준비들이 산발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또한 성직의 대를 이어 교회의 세습을 도모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미자립 교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중대형 교회는 성직의 세습이란 이유들 때문에 사회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다.
또 하나의 경우는 소수의 기관 목회자들이 연금 혜택을 받게 되고, 어떤 분들은 다행히 은퇴한 교회에서 노후 생활비를 지원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수혜자는 극히 한정되어 있고, 대다수 은퇴 목사의 6-70%가 대책 없는 은퇴를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교단 안에 교단 나름대로, 뜻있는 분들이 긴급하게 은급제도를 만들기도 하고, 은퇴관을 설립하기도 했다. 초 교파적으로 목회자 연금제도를 추진하는 일들도 시도해 오고 있다. 그러나 그런 노력들도, 현재 실정으로는 만족할 만한 대책이 되지 못한다. 예장통합 전국 목사회의 자료에 따르면, 68%가 노후의 대책이 어렵다고 말하고 있고, 현재 은퇴자의 35%가 자녀들의 열악한 후원으로, 20%가 정부 빈민 지원금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한 교단의 통계를 예로 든 것이다.) 주요 교단들의 은퇴목사는 약 6500명쯤이라 추산한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교단마다 은급제도에 부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회는, 부족한 은급제도에 준한다기보다, 개 교회적 입장에서 목회자들의 노후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교회 안에 심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은퇴 시기가 되면, 개 교회는 물론 은퇴 목회자들 마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3. 목회자 은급 제도의 방향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국가 사회의 여러 부문에 걸쳐 많은 질서를 찾아 왔다. 많은 국가공무원, 교육공무원, 직업군인, 그리고 산업 전선에서 일하는 분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처음부터 퇴직금이나 연금이 충분히 준비되어온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끝없는 갈등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차 제도화되고, 오늘 우리 사회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도 뒤늦은 감은 있지만, 목회자 은급 문제에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 종교연구 실태에 의하면 은퇴 및 복지제도가 잘되어 있는 순서는 종단별로 원불교, 불교, 천주교 그리고 개신교 순이라 한다. 각 종단들이, 그 단체의 은퇴와 복지를 위해, 부단히 힘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한국 개신교회도 막차를 탄 셈이다.
목회자 은급제도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 모두의 생각이지만, 지금 이 일에 참여하여 애쓰시는 분들의 수고만큼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운 반면, 힘겹고 어려운 장애 요인들이 많이 가로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이일을 포기하거나 좌시할 수 없다. 지금은 벅찬 일이지만, 한국교회가 좀 더 기도하고 힘써 나가면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방안들이 제시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세대 뿐만 아니라, 차세대 목회자들이 안심하고 목회 활동을 계승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의 안녕과 질서는 앞으로 한국교회 성장에 사활을 좌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리 모두의 기도가 절실하다. 그리고 여기 따르는 재정 문제, 전문 인력의 문제, 은급제도 문제, 국가 지원문제 등 다방면에서 제도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연구와 노력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개 교회들도 평생 외길인생을 살아온 성직자들의 노후와, 은퇴 계획에 대하여, 더 깊은 배려와 성직의 권위와 존엄성, 그리고 교회의 사회적 영적 책임을 위해, 공통체적 책임을 가지고, 기도와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4. 새로운 은퇴 문화
요사이 서점에 나가면 은퇴설계에 대한 많은 책들이 나와 있다. 대개가 금융계통에서 오래 활동하던 분들의 경험 있는 저서들이다. 목회자들의 은퇴설계를 위해서도 참고가 될 만한 책들이 많이 있다.
한국은퇴설계연구소 회장인 두진문 회장은, 2015년 ‘은퇴혁명’이란 책을 내놓았다. 그의 책 가운데서 “은퇴! 은퇴는 끝인가 새로운 시작인가”로 시작해서 은퇴 후 생존전략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제안은 “재무자산에서 비 재무자산으로”라는 대안을 말한다. 물론 그의 말은 재무자산이 필요치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재무자산을 뛰어넘을 만한 자산이, 은퇴하는 모든 이들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소중한 자산을 포기하고, 은퇴 계획을 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은퇴를 맞게 되는 이들에게, 중요한 위기관리의 지침서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자산이란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유무형의 가치를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현금, 부동산, 증권, 기계 설비 등이 있다. 또한 영업권,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 등의 비 재무자산도 있다. 그 외에도 기술역량, 인력 관리, 기업 문화, 이미지 평판 등이다. 그러나 개인자산이란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금, 예금통장, 부동산, 자가용 등 개개인 에게도 보이는 자산이 있다.
그러나, 개인의 신앙, 그의 인품, 경험, 연륜, 지식, 건강, 가족, 친구, 인간관계 등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 우리 인생을 지키는데 정말 중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비 재무자산들이 수두룩하게 있다는 것이다. 이런 중대한 것들을 놓치거나, 아주 쉽게 포기해버리고, 재무자산에만 몰입하거나, 편중된 은퇴계획을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란 것이다.
우리 모두가 “나도 그런 것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이 무슨 대안이냐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무심하게 놓치기 쉬운 부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진문 회장의 “은퇴 혁명”은 단순한 충고가 아니고, 그 자신을 파산에서 재기로 일어나게 된 힘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풍족한 재산을 가지고 있고, 노후 연금이 든든하다 하더라도, 그 외에 가진 것이 없다면 당신은 가난뱅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재물을 쌓아두고 있으나,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어느 부자”(눅12:21)와 같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노후를 설계하는 은퇴자들이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지혜라고 생각한다.
재무자산만이 인생 행복의 전적인 해결사로 알고, 편중하고 있는 은퇴자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 재무자산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깊이 인식하고, 생각을 바꾸어 보자는 것이다.
노후의 경제적 안정과, 재무자산만을 기대하는 은퇴설계보다, 우리의 풍부한 인생 경험과, 비재무자산들을, 남은 생에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 환원하자고 하는 Retire(타이어를 바꾸어 새출발하자)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두진문의 은퇴혁명은 한사람의 인생고백 같은 것이고, 신앙고백 같은 책이다. 은퇴 후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받아야 할 예우나, 대접을 생각하기보다, 생각을 바꾸어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잠재되어 있는 또 다른 자산을 개발하여, 생의 활력을 되찾아보자는 말이다. 아주 중요한 제안이라 생각한다.

5. 목회자의 은퇴 문화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며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삼상7:15) 했다.
바라기는 목회자들의 노후 문제를 위해, 한국교회 전체가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고, 좀 더 새로운 대안을 위한 전문 인력을 투입해 연구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오늘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교단의 지도자들과 교회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합리적인 제도 수립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환경은, 더욱더 성직의 존엄성과 품위를 지키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떻게 성직을 지켜낼 것인가? 어떻게 한국교회의 영성을 지켜야 할 것인가? 더 시급한 과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나는 이스라엘의 사사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였던 사무엘의 은퇴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그가 살던 시대라고 오늘 우리시대 같은 어려움과 애로가 없었을 리 없다. 그러나 그는
1. 그가 은퇴 후 자기 고향 라마에 내려가,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며 백성을 다스렸다 는 것이다(삼상7:16). 은퇴 후에도 영적 권위를 잃지 않았단 말이다.
2. 사무엘은 성소에서 뿐 아니라, 은퇴 후에도 자기고향 라마에 내려가, 거기서도 제단을 쌓았다는 것이다.(삼상7:17) 나라와 민족 위해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았다는 말이다.(삼상12:23)
3. 더욱 중요한 일은 사무엘이 살아서 뿐 아니라, 그의 사후에도 일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사무엘이 죽은 후에도 사울왕은 엔돌에 신접한 여인을 동원하면서까지, 죽은 사무엘 보기를 소원했다 는 것이 이것을 입증한다.(삼상28장)
이미 죽은 사무엘 이었지만, 그의 사후에도 사울왕의 가슴 속에, 그리고 이스라엘 겨레의 가슴속에, 영원히 잊지 못할 스승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퇴임 후의 사무엘 !’ 그의 생애가 목회자의 은퇴 문화의 지침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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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목회자 은퇴문화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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