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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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상륙한 개신교 원년을 1876년 2월 27일 조일수호조약으로 보는 이해도 있고, 민경배교수는 1884년으로 보기도 한다. 한국개신교의 특징으로는 선교사가  한국 땅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한글 말 성서가 번역이 되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교사로 하여금 교회가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의 역사, 그리고 한국 민중의 주체적인 믿음의 실천과 행동으로 한국교회의 선교는 시작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왕과 궁중을 중심으로 한 지배자들의 역사에서 이제는 역사의 변두리에 살던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해 가는 역사의 주체인 민중이 역사중심에 서게 되는 시작을 알리게 된 것이다. 물론 열강과 일제의 침탈이 둘러싸고 있는 암흑과 어둠이 한반도의 운명을 도마에 올려놓으려는 상황이 전개되고는 있었지만 하나님은 분명 한반도에 새로운 역사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음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일제의 병탄이 한반도를 깊은 지하로 몰아넣는 죽음의 긴 세월이 있었고, 그 죽음의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다시 미소의 냉전의 산물인 민족분단과 이후에 세계적 민족전쟁을 겪어야 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71여 년의 분단과 세계적 민족전쟁을 겪으며 북은 북대로, 남은 남쪽대로 살아오는 동안 그 깊은 고난과 고통을 겪어내며 하늘의 섭리를 향하여 울부짖고 몸부림치며 한 많은 시간들을 이겨내 오고 있다.
근자에 벌어진 박근혜와 최순실게이트를 통한 국기문란과 국정농단으로 대한민국은 방향성을 상실한 채 존재의 의미가 혼돈에 묻히고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여전히 남북으로 갈라 서 있고, 역사적으로는 친일세력의 잔재들이 민족의 기상을 흐려놓고 있으며, 친일에서 이제는 친미의 신 식민을 살고 있다. 해방공간에서의 미소의 냉전의 산물인 좌우 이념의 분단 이데올로기를 정권유지의 방패와 지배이데올로기로 삼고 여전히 민족의 희망과 미래를 짓밟고 있다.
이러한 거짓과 진실의 혼돈 속에서‘촛불혁명’ 그나마 새 역사를 여는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것은 정치의 지도자나 종교지도자가 아니라 바로 130 여 년 전에 살아 역사의 변두리로부터 역사의 중심과 주체로서 있게 된 민중(사실은 모든 역사를 떠받치고 살아 온)이 있는 것이다. 트럼프를 통한 미국으로부터 세계는 요동치고 있다. ‘자국우선주의’의 이익을 주장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는 함께와 더불어의 역사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개인의 유익을 추구하는 자기 실존의 역사가 된지 오래이다. 보이지 않는 신을 주장하며, 그 이름으로 민중을 협박하고 속이며, 착취하는 종교라는 이름의 거짓과 위선이 우리의 희망을 더욱더 어둡게 하고 있다.
믿어야 하는데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역사를 다가오는 미래의 희망으로 채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희망을 쉽게 노래할 수 없다. 한국교회는 교회대로, 세속의 역사는 역사 대로 분명히 문명의 파괴와 새 문명의 물결이 밀려오고 그 파고는 아주 거칠고 높게 치고 있다.  과연 한국교회는 한 민족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대통령의 탄핵과 대선이 앞에 놓이고 진정한 혁명과 개혁 세력 앞에 거짓된 세력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여 말해야 되고 ‘예와 아니오’를 확실히 말해야 한다. 설령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고통이 역사적 예수의 처형에 임하는 고통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교회가 그래야만 한민족의 미래와 희망을 담아낼 수 있다.
십자가는 무늬만의 십자가도 아니고 부활은 흉내만 내는 부활이 아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은 모든 어둠과 모든 죽음의 세력들을 몰아내고 마침내 어둠을 이기는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이 한 해에 한국교회는 불의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관계를 단호히 끊고 생명의 능력으로 새로이 태어나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개혁과 혁명의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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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한민족/홍 성 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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