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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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순천 태생
김삼봉(金三峯 1941.2.15~) 목사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어려운 가정에서 4남2여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 때는 일제 말기여서 정상적인 교육조차 받을 수 없는 시대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삼봉 소년이 살고 있었던 순천지방에는 이미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들어와 선교지부(Mission Station)가 설립되어 있었고, 많은 교회의 설립과 기독교게통의 교육기관과 의료활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 덕택에 기독교복음을 일찌기 접해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삼봉 소년이 태어난 1941년은 일제가 조선에 있는 젊은이들을 징용해 가며 여성들은 위안부로 마구잡이로 끌어가는 만행이 방방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었던 암울한 시기였다.
일제는 전국 요소요소마다 소위 신사(神社)를 설치하고 애국충정이란 이름으로 조선인의 정신 말살 계획을 수립, 신사에 머리를 숙이게 했고, 조선말 사용을 금지시키고 일본말을 공용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성씨(性氏)마져 고쳐 일본식으로 창씨 개명케 하였으며, 신사참배 강요로 조선교회가 혼란 속으로 휘몰아치게 되어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체포 구금되기에 이르렀고, 교회는 문을 닫고 자기들의 명령에 순응하는 천주교와 감리교 외에는 교단을 폐쇠시키고야 말았다.
이러한 어려운 시대에 태어난 삼봉 소년은 초등교육을 제대로 받을 형편이 못되었다. 그러나 교회에 출입하면서 지식과 신앙에 눈을 뜨게 되었고 소년의 마음 속에는 배우고자 하는 열망에 늘 목말라 하던 차에 미 남장로교 선교부에서 세운 순천매산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꿈을 이루었다. 그 때가 1960년 2월이었다. 6.25 전쟁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틈새에서도 삼봉 소년은 선교사의 도움으로 근대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으니 그나마 행운이었다고 하겠다.
그는 기독교계통의 학교에 다니면서 장차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며 성장하였다. 어느날 갑자기 신학을 해서 하나님의 종으로써 헌신해야겠다는 소명을 느끼고 서울에 있는 총회신학교(현. 총신대 신학대학원 전신) 본과를 지망해 서울로 진학하게 된다. 고등학교를 마친지 10년만이었다. 그동안은 가정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으로 직장생활을 하며 가사를 돕느라 신학교 지망이 10년이나 늦어져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0년이 지난 1970년에 총회신학교를 마치게 된 것이다.

서울 신정동서 천막 치고 교회 개척
총회 목회대학원 입학해 신학 재교육 받아
기독신문·총신대 재단 이사장, 총장 직무대행도 거쳐
‘임시목사’제도 없애고 ‘시무목사’로 통일
영상콘텐츠 전문성 갖춘 고등학교 설립

그는 졸업하자마자 서울 신정동에서 가족중심으로 대한교회를 개척하였다. 그 때가 1972년 6월 18일이었다. 당시 신정 3동에 있는 남의 땅을 빌려 27인용 천막을 치고 첫 예배를 드린 것이 오늘의 대한교회(大韓敎會)이다.
1973년 10월 11일 김상봉 강도사는 한서노회에서 목사장립을 받았다. 이듬해 1974년 4월엔 같은 강서구 신정1동 372의 2번지에 50평 규모의 첫예배당을 신축할 수 있었다. 1976년 10월 3일엔 강화순, 이문혁 두 사람을 장로로 세워 정식 조직교회로 출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교회는 순조롭게 성장해 갔고 규모가 확대되어 1978년 11월 7일엔 교회 설립 후 첫 위임목사가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1980년 4월 9일 강서구 신정1동 981의 12 현재의 위치에 2차 신축교회를 위한 착공예배를 드리게 되었으니 교회의 외형이 이룩됨과 동시에 신자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과 노회와 총회를 섬기는 일에도 자연스럽게 앞장서게 되었고, 교회 내적으로도 1981년 11월 5일과 1984년 12월 9일 두 차례에 걸쳐 장로장립과 장립집사 및 권사를 세우는 큰 임직식이 이루어졌다. 드디어 1987년 3월 7일엔 또다시 집사 임직과 권사 취임식과 더블어 그동안 추진되어오던 교회 건축이 완공되어 헌당식 예배를 온 교유들과 함께 드리게 되자 중형교회로 성장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교회가 이렇게 성장 부흥하게 되자 당회장 김삼봉 목사 역시 교회 내외적으로 봉사하는 사역 또한 점점 확대되었다. 먼저는 자신의 역량 발휘인 밑거름이 되어야겠다는 자의식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총신대학교에 위탁하여 시행하고 있는 총회목회신학원(M.M 목회학 석사과정)에 진학, 신학재교육 과정을 이수하였고, 1996년 4월 예장총회 한서노회(漢西老會) 제15대 노회장에 피선되었으며, 같은 해 6월엔 제81회기 예장총회 공천 부 서기로, 이듬해 1997년 제82회기 총회에서는 서기로 피선되기도 하였다.
1998년 4월엔 서북지역노회협의회 회장, 1999년 9월 총회에선 회록서기로, 2009년 본교단 총회 부회장으로 피선, 이듬해 2010년 9월 27일에서 10월 1일까지 강원도 홍천 대명 비발디파크에서 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제95회 총회에서 교단의 수장(首長)의 자리에 올랐다(교회선립30주년 감사예배 순서지 2002, 대한교회 p.4. 교회연혁 참조).
김삼봉 목사는 총회장에 오르기 전에 이미 2005년 9월 교단지인 기독신문 이사장으로, 2006년 11월엔 총신대학교 재단이사장, 2008년 11월엔 총신대학교 총장직무대행 역임 및 부총회장의 경륜을 쌓아 교단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을 나타내 보였다.
그는 교회와 교단 내에서만 그의 역량을 발휘한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사역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몇 가지 예를 들면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서울시 양천경찰서교경협의회 회장, 양천구청교구협의회 회장, 양천구교회협의회 회장으로 지역교회와 행정기관과의 협력을 모색 선교의 기반을 구축하였으며, 서울지하철선교협의회 회장과 전국교통문화선교회 이사장을 맡아 봉사하면서 특수선교에 눈을 돌리기도 하였다.
2002년 6월 6일에는 교회설립 30주년 기념예배를 드림으로 일선에서 물러나며 2011년 11월 12일 대한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김삼봉 목사의 목회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메세지가 있어 여기 소개하면 성경 골로새 1장 24~29절을 본문으로 한 설교 ‘주님의 몸된 교회와 일꾼’에 잘 나타나 있다. 교회는 세상적으로 훌륭하고 돈많고 권력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죄악 세상에서 택함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백성들이 모인 곳이다.
그는 여기에서 교회의 중요성을 세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 주님의 보혈로 사신 백성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둘째, 주님의 몸된 교회이기 때문이다. 셋째, 진리의 기둥과 터이기 때문에 교회는 세상 그 어느 기관과 비교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꾼으로써의 모습은 교회의 일꾼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되고 그 임무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하며 모든 일을 할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과 신앙으로 그는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하였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보여진다.
김삼봉 목사가 신앙을 교육에 접목해야겠다는 교육비젼을 가지고, 2000년대(3월)에 들어와 3년 과정의 고등학교를 설립 교회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다. 1개학년 6학급으로 3년 18학급(영상콘텐츠학과 영상케미어학과 영상경영과)이 정상운영되고(이사장 윤영민 목사) 있는 것은 한국선교 초기 선교사들의 교육, 의료, 선교를 연상케 하는 간접선교방식으로 중·장기적인 선교과업이라 생각된다.
일반 교육기관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합동측 교단 안의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선견지명적인 정책으로 다른 교회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김삼봉 목사는 앞으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교회 성도들의 사랑이 넘치는 교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교회,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새시대에 날마다 새로워지는 교회로 지향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가 재임했던 제95회 총회 중요결의안을 살펴보면, ① 헌법정치 제4장 4조 2항 임시목사의 명칭을 시무목사로 하기로 하다. ② 총회 선거규정을 개정하다(중요개정사항은 총회장 연령 만 60세 이상된 자 삭제). ③ 세례교인  헌금 시행기준을 서울 10,000원 도시 7,000원 농어촌 5,000원으로 하다.
김삼봉 목사는 슬하에 2남1녀를 두었으며 그가 설립 개척한 대한교회를 사위 윤영민 목사가 바톤을 이어받아 원로와 함께 승리로운 목회사역을 이어가고 있다(제100회 총회결의 및 요람. 이승희 김창수편, 2016 예장총회발행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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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제95회 총회장 김삼봉(金三峯)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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