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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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북경 태생
최병남(崔炳男 1943.1.2~) 목사는 중국 북경(北京)에서 태어났다. 부모세대가 조국의 피폐했던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땅으로 이민 갔던 조선의 디아스포라의 환경을 짐작할 수 있다. 위로는 누님이 한분 있었고 최병남 소년은 외동아들로 이국 땅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가 태어난 1940년대는 소위 일제 말기에 속했던 시절로 조선의 미래를 꿈꿀수 없었던 암울한 시대였다. 그러던 중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게 되어 8·15 직후 부모님의 손에 이끌리어 대한민국 서울로 돌아와 정착하게 되었다.
최병남은 귀국하여 어린 유년시절부터 충현교회(당시 충무로 소재)에 출석해 신앙생활을 하며 성장했다고 후일에 언급한 바 있다. 그가 기독교에 입신해 신앙생활을 했으나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은 중학교 1학년때 성령충만함의 은혜를 체험 함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교회에 출석할 때는 늘 제일 앞자리에 나와 예배를 드렸고 말씀과 기도로 주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다가갔다. 그는 고교진학을 앞두고 약간의 고민은 있었으나  미션계통이 대광(大光)고등학교를 선택해 성경을 배우며 정기적인 교내 채플을 통해 본격적인 신앙훈련을 받기에 이르렀고, 고등학교를 마치자 마자 주저함 없이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지원해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최병남은 신학교를 마치고 당시 동도교회(東都敎會·최훈 목사 시무) 전도사로 부름받아 사역하던 중 1975년 이은희 사모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동도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시작해 강도사를 거쳐 부목사로 사역한 기간은 당회장 최훈 목사의 강도높은 목회훈련 기간이기도 했다. 그는 동도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중 뜻한바가 있어 도미(度美) 유학의 길에 오른다. 그 때가 1981년이었다. 그 때는 최 목사에게 1남2녀의 자녀를 두었을 때이고 그의 나이 또한 39세로 40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모로 늦은 유학의 길이었다. 주위의 선배들이나 동료들의 만류도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기회로 생각하며 미래의 한국교회의 밑거름이 되어야 겠다는 큰 포부도 있었기에 미련없이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공부도 해야했지만 교회를 담임하면서 학업을 진행할수 밖에 없었다. 주위에서 목회와 학업의 병행이 어려울 것이란 염려에도 불구하고 최 목사는 담임한 교회도 배로 성장하였고 학위도 동료 유학생들 중 가장 먼저 마칠 수 있었다.

목사안수 받은 후 미국 유학
서울 왕십리교회서 대전중앙교회로 부임
경목 활동 통해 지역사회와 유대 도모
기도와 전도와 성경공부로 교인들의 영성훈련
총회산하 상비부에 총무제도 신설

이렇게 미시간주 그랜드래피드에 있는 칼빈 신학교(Calvin The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Th.M) 학위를 마치고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 있는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신학교로 가서 박사학위 과정을 이수하였다. 참으로 어려운 유학생활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풍성하게 주셔서(히 4:16) 미국에서 유학생활하던 중 막내딸까지 하나 더 얻은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이렇게 영성으로 지성(知性)으로 준비된 최목사에게 서울 왕십리교회의 부름을 받고 1986년 12월에 부임해 목회사역을 하게 된다. 부임 후 만 5년동안 1991년 말까지 제대로된 목회철학을 펼쳐보이며 충성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대전중앙교회로부터 또 새로운 주님의 부름을 받게 된다.
오늘날 목회현장에 비해 보면 정말 하나님의 은혜라 할 수 밖에 없는 인도하심이었다. 왜냐하면 그 흔한 이력서 한장 없이 대전중앙교회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1991년 12월에 대전중앙교회로 부임해 2012년 12월 25일 원로목사로 추대 받은 날짜지 20년이 넘게 행복한 목회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대전중앙교회에 부임한 후 교회에 출간한 교회지(敎會誌)「대전중앙」 창간호 특별대담에서 부임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정든 왕십리교회를 떠나 새로운 임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기도하는 중 분명히 하나남의 음성을 들었고 그래서 이렇게 오게 되었는데 장로님들을 비롯한 모든 성도님들이 매우 순수하고 깨끗한 모습이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신앙수준도 있고 열심도 있어보여 장래 발전 가능성이 많은 교회로 보였습니다.”
그는 대전중앙교회를 섬기면서 1994년 3월엔 대전노회 노회장으로 봉사하였고, 1994년 4월 25일부터 5월 6일까지 미국에서 개최된 21세기 교회성장세미나에 참석해 세계교회의 교회성장사를 살펴보기도 했다.
이듬해 1995년 가을학기부터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목회계획세미나> 과목을 강의하기도 했고, 대전시 경목(警牧)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와 유대를 도모하기도 했으며, 지도자로서의 리더쉽을 발휘하였다. 필자가 멀리 혹은 가까이에서 본 최목사의 풍기는 언행역시 고넬료에 비견할 만한 인물임을 느끼었다. 그가 은퇴직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공동회장으로 여러 부서에서 봉사할 땐 항상 성직자로서 겸손함과 경건성의 리더쉽을 발휘 한기총을 원만하게 협력하며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목회비젼은 늘 기도목회라 했다. 그의 지론은 모든 일이 기도라는 무릎만큼 교회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성도들에게도 기도중심의 삶을 살도록 지도한다. 기도없는 삶은 개인이나 교회가 모두 실패라고 말한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강조했고, 때로는 횃불새벽기도회, 때로는 특별산상기도회를 계획, 교인들을 독려한다. 특히 교회창립5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는 1천번제 새벽기도회를 추진 신자들의 영성을 깨우치기도 했다.
다음엔 전도목회를 강조하였다. 최 목사에게 기도가 목회의 우측 날개라면, 전도는 목회의 좌측 날개라 할만큼 교인들에게 전도를 강조했다.
최 목사는 기도하는 교회로, 전도하는 교회로 지향하면서도 이를 바르게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야 한다는 교회의 영성과 신자들의 역동성을 매우 강조하는 전인적 목회를 지향했다.
최목사에겐 선교적 비젼이 있었다. 그것은 국내 선교와 아울러 해외 선교의 병행이었다. 지역내 열악한 지역에 정기적인 무료의료전도행사를 장애인 선교와 불우이웃에게 사랑의 복음전달 농어촌 미자립교회를 돕는 선교의 열정을 불태웠다. 이와 병행하여 몽골에 이혜영 선교사(1991. 8. 파송), 브라질에 양보라 선교사(1994. 6. 파송), 이원길 선교사(1994. 2. 파송), 파라과이에 정금태 선교사(1994. 7. 파송), 북한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파송된 강일구 선교사(1997. 10)를 파송하고, 어떤 곳에는 협력선교를 수행하기도 했다.
최 목사는 목회사역을 하면서 성인교육에도 큰 비중을 두었다. 제자훈련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교리교육, 책별성경공부, 개인성경묵상, 교회역사 교육 등을 꾸준히 시행해 교회의 건강성을 유지했다. 구체적으로는 교구별성경공부, 부부성경공부, 제직세미나, 입교자교육, 구역장학교, 중직자교육, 장로피택자교육 등을 통해 교인다운 교인, 제자다운 제자 육성을 위해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교인 상호간의 의사소통과 신앙전달 매체로 <대전중앙>이란 교회신문을 발행 성도들 간의 신앙교류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게 충성을 다해 온 최 목사는 2008년 9월 22일부터 26일 사이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제93회 총회에서 교단의 수장(首長 총회장)의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맞이하게 된다.
그가 재임했던 93회 총회 중요 결의안을 몇가지 살펴보면, ① 총회 로고를 새로이 변경하고, ② 총회산하 상비부에 총무제도를 신설하기로 하다 ③ 2012년 교단설립 100주년을 준비하는 기도한국 2009, 칼빈 탄생500주년기념대회를 추진키로 하다. ④ 21세기 총회종합센터 건립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하다. ⑤ 총회주일(세례교인 헌금)을 아래와 같이 시행하기로 하다. •각노회 소속교회 50%이상 납입하지 않을 경우 총대권 제한 •목표금액 95% 이상노회에 대하여는 20%인센티브 주기로 하다. •현행 총대 파송제도(7당회당 목사, 장로가 1명을 세례교인수 비례 총대를 각노회별로 추가배정함으로 교단 규모에 걸맞는 총대수로 확대키로 하다(제100회 총회 결의 요람, 예장총회 2015. p.39 참조).
최병남 목사는 슬하에 1남3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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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제93회 총회장 최병남(崔炳男)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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