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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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제물포의 한국 교회사적 의의와 사건들을 재조명하는 제물포 문화 아카이브’(이사장 고창곤 목사)의 사역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제물포 문화 아카이브는 제물포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물과 유물 등을 보존하고, 이를 대중에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30여명의 회원이 함께하고 있는 제물포 문화 아카이브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창곤 목사(인천 영락교회)는 인천 제물포에 대해 한국 교회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면서 “130여 년전 부활절 주일에 20대 중반의 세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부부가 제물포항에 도착한 곳이며, 19021222일에는 인천내리교회 성도들을 중심으로 121명이 미국 상선 갤릭호를 타고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떠나면서 한인이주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한국 초창기 선교의 시작점이라 볼 수 있는 제물포를 위해 고창곤 목사는 현재 역사적 자료를 고증해, 전시회 및 발표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인천 제물포 지역은 본래 고구려의 미추홀현이었는데, 백제가 점령한 뒤 매소홀현이 되었다. 372(근초고왕 27)부터 475(문주왕 1)까지 100여 년간 중국의 동진북위와 내왕하는 근거지였고, 고려시대에는 서남해안 지역과 개성을 잇는 해상 교통의 요지였다.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연결되는 중림도의 종착역이었으며, 영종도를 연결하는 뱃길이 열려 있었다. 이곳은 특히, 삼남의 조선이 한강에 진입하기 전의 정박지였으므로 이곳에 원이 있었고, 특히 1876(고종 13)의 강화도조약과 1882년의 제물포조약이 체결된 뒤 개항장으로서 급속히 변모해 나간 곳이기도 하다.

고 목사는 제물포와 인천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해 그 역사성과 의미를 새롭게 부여해 가고 있다. 그가 기록물에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지역 문화 속에 한국교회 기독교 역사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문화 속에 들어 있는 초기 기독교 역사를 조명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인천 지역의 교회 목회자와 장로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제물포 문화 아키이브를 통해 시청과 구청 등을 순회하며 개최하는 전시회는 시민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고 목사는 문화를 통해 뿌리를 찾아내고 그 속에서 기독교의 역할을 고증해 알리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에는 인천 출신들 중 이 땅을 계몽 시킨 인물들의 기록과 유물 등을 찾아 새롭게 조명해 보는 시간을 가진바 있다면서 이처럼 제물포와 인천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해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에 앞장 설 방침이다고 말했다.

한편, 고창곤 목사는 국내 기독교 역사를 보존하고 재조명하는 사역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일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고 목사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문화예술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 문광부 산하 7개 부서에 문화위원들 중 기독교 역사를 담당하는 위원이 없는 것을 알고 관련 부처에 지속적으로 건의해 12명 중 1명의 기독교 역사 관련 위원을 둘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중앙박물관에 기독교 관련 역사 유물이 없는 것을 보고 당시 관장을 찾아가 기독교 유물관을 만들어 줄 것을 건의 한 적도 있다.

한국 기독교의 시작을 간직한 인천 제물포를 알리는 그의 사역이 한국교회 성도들의 관심과 기도 속에서 큰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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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곤 이사장, 한국 기독교의 시작 ‘인천 제물포’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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