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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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년(2017) 올해의 성탄절은 다른 해의 성탄절에 비해 크게 다른 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종교개혁 5백주년의 해에 맞이하는 성탄절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촛불집회가 새 정부를 앞당겨 탄생시킨 해에 맞이하는 성탄절이라는 점이다. 이 첫째와 둘째의 일들은 앞으로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것들이므로 그 의미와 감회 또한 그만큼 크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성탄절은 한 해의 마지막 달(12월)에 있고, 또 날짜도 하순(下旬, 25일)에 위치해 있으므로 이날을 우리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1년을 반성하는(되돌아보는) 날로 삼는 것도 좋을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5백 년 전(1517)에 소위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이때의 프로테스탄트는 곧 로마 가톨릭에 대한 프로테스트(저항)이었다. 기성(旣成) 가톨릭교에 대한 신생(新生) 개신교의 항거였던 것이다. 기성 가톨릭교회의 어떠한 면에 대한 항거였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기성교회(가톨릭)의 악습에 대한 항거였다고 할 것이다. 악습이란 곧 나쁜(좋지 않은) 습관이다.
당시 가톨릭교회가 지니고 있던 악습들 중의 하나는 바로 ‘세습’ 문제였다고 하겠다. 세습이란 기득권을 무비판적으로 대를 이어 후대에게 물려주는 일이다. 객관적으로 보아 당시(중세)의 기성교회는 부패할 대로 부패했는데 그런 기성교회를 선대의 주교가 후대의 주교에게, 마치 아비가 자식에게 그러하듯 아무런 거리낌(뉘우침) 없이 주교좌 성당을 물려주곤 했던 것이다. 그러니 대(代)가 거듭될수록 더욱 타락할 수밖엔…. 결국 종교개혁이란 역풍을 맞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던 셈이다.
종교개혁 기념행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과거사로 기념하는 일만이 아니라 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 교회 지도자들이 기념의 행사에만 열을 올리지, 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니 개신교 울안의 교회세습이란 악습이 자리를 잡아가더라도 무관심 일변도로 지나쳐버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대형교회들의 교회세습은 ‘당신들의 천국’ 만들기에 불과할 뿐 우리 모두의 천국(하나님 나라) 건설과는 무관하다. 성탄절 아기 예수께서 그들을 바라보실 때 “저 지독한 욕심꾸러기들!”이란 반응밖에는 달리 무슨 긍정적 반응을 따로 보이실 것 같지 않다. 그런데 그 ‘욕심’이란 것에 대해선 또 어떻게 해석되었던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그 결말의 두려움이 이미 적시(摘示)되지 않았던가?
작년 10월 29일에 이른바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그것이 끝내는 국회를 중심으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뤄내더니, 다음 단계로는 헌재(憲裁)에서의 파면마저 이끌어내어 전(前) 대통령의 권좌로부터의 완전 실각을 성사시켰다. 그리고는 금년 5월 10일에 문 대통령의 새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문 대통령이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정치적 혁신을 이루겠다고 추진하고 있는 강력한 개혁정책이 국민들로부터 지금까지 높은(70% 이상) 지지를 받아왔다. 촛불집회의 정신이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신이었기 때문에 새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아왔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결과라고 보아야겠다.  
적폐청산(積弊淸算)이란 말을 다른 말로 바꿔 표현해 보자면 곧 파사현정(破邪顯正)이 된다고 보겠다. 교수신문이 내년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을 뽑았다고 한다. 그것은 올해의 적폐청산을 내년에도 파사현정으로 계승하자는 뜻이 되겠다. 교수신문을 통해 전국 교수들이 보여준 진의도 알고 보면 촛불민심과 같다고 생각된다. 적폐는 청산되어야 하며, 또한 사악(사특)한 세력은 파멸되고 올바른 이들이 크게 드러나야 한다는 뜻이다. 지식인이요 지성인인 전국 교수들이 풀뿌리 서민들의 촛불혁명 대열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비교적 다른 이익집단에 덜 유착되어 있고 이해관계에 있어서 비교적 거리를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도자 모세가 적폐세력인 애굽 왕 바로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해 광야로 진격하고 있었을 때, 그 성과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보이자 불만세력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며 모세를 배척하기 시작했다(민수기 14장). 지금 우리나라의 사정이 그와 매우 흡사한 것 같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말이 있듯이, 물색 모르고 날뛰는 이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해 진격하는 모세의 군대를 훼방하고 있다. 그러나 모세의 진격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방해꾼들의 패배와 파멸(민 14:26~)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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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현정의 성탄절을 보내며-임 영 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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