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3부 이제는 교회개혁과 신앙개혁이다

48. 기독교 신앙의 본질-‘하나님의 형상’ 회복

12-1.jpg
 어떤 이슈를 가지고 격렬한 시위를 하는 군중들 가운데는 그 이슈의 핵심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위 군중심리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교회를 출입하는 수많은 교인들 중에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참 뜻을 추구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교인들이 얼마나 되는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속성 때문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주여 주여” 하는 자는 많은데, “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적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은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마 7:13,14)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다른 모든 피조물들은 ‘말씀’으로 지으셨지만,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셨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창 1:26) 사람을 만들자고 하셨다. 여기에서 복수 1인칭대명사 “우리”는 삼위 하나님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 다음에 나오는 “형상”(히.첼렘)이나 “모양”(히.데무트)은,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하려는 신학적 시도가 있기는 하나, 유사한 단어를 연속적으로 사용하여 강조의 효과를 나타내는 히브리인들의 표현 방법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모습과 속성과 성품을 부여받은 존재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참으로 존엄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창조된 피조물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할 때에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외형이나 모습을 연상하게 되지만 사실 더 중요한 핵심적인 의미는 그분의 성품을 부여받았다는 것이고, 그 성품의 본질은 “사랑”이다. 태양이 열과 빛과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그것이 발산되듯이, 하나님은 죄 많은 인간을 사랑하려고 노력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 자체의 본질이 사랑이시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예수님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오랜 세월동안 배우고 깨달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과 관련하여 매우 심오한 의미를 깨우쳐 주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간이 범죄하므로 그 하나님의 형상은 크게 훼손되었고 거의 상실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그 “형상”이 남아있기 때문에, 비록 이기적이기는 하지만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을 받을 때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악을 행하고 나면 불안하고 불쾌하고 선을 행하고 나면 평안하고 기쁜 것도 아직 사람에게 하나님이 부여하신 성품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예수 그리스도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하지만, 그 형상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을 최단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모세도 그분의 등만 보았을 뿐이다(출 33:23).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내려오심으로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골 1:15)이시다.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에 대하여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히 1:3)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삶과 그분의 가르침을 유심히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에 부여받은 “하나님의 형상”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한 번은 예수의 제자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그 때 예수님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그러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사람들과 함께 사시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친히 자신에 성품에 대하여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마 11:29)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성품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그분의 모든 것을 남을 위한 헌신과 봉사에 바치셨다. 예수님은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마 4:23)는 일, 즉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을 전인적으로 회복시키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일하셨고, 마침내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셨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고 그분의 성품이다. 사람은 원래 그러한 속성과 성품을 가진 피조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것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것’은 ‘예수의 성품을 닮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하면서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갈 4:19)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권면을 하고 있는 사도 바울은 자신도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위하여 끊임없는 투쟁을 하면서 복음전도에 헌신하였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 바울이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예수를 닮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 이러한 말씀들 가운데, “몸을 쳐서 복종하게”한다는 말씀이나, “참된 것을” 한다는 말씀이나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는 말씀들은 모두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 즉 예수의 성품을 닮기 위하여 투쟁하는 사도 바울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사실상 타락한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처럼 그러한 의식과 목표를 가지고 전진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라고 말씀하셨다. 진리의 말씀에 순종할 때 예수를 닮아가는 것이 성경적 이치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3)고 하였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지킬 수 없는 진리의 말씀,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사도 바울은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4)고 하였다. 예수께서도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요 16:13)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는 것은 예수님의 약속이다. 결국,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창조시에 부여받은 하나님의 형상, 즉 그분의 성품을 회복하는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48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