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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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개화파 지식인 박영효(1861~1939)는 “내가 미국을 들어가 여러 곳을 유람하며 마음을 두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과연 그 풍속이 문명(文明)하고 순량(純良)함은 오로지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나라가 정치가 화평하고 민간사업이 번성함은 종교와는 무관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근원을 찾아보면 종교의 가르침에 의하지 아니함이 없고 우선 교육이나 정치나 그 모두가 종교적 영향으로 풍속이 순량하고 민업이 흥왕케 한 것 같다. 원래 전국민이 모두 신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 종교의 영향은 자연히 스며있다. 대체로 종교의 장점은 오직 사악함을 금할 뿐 아니라 사람들을 자립케 하는 효과가 있으며 심려강직(心廬强直)하고, 덕과 의로서 서로 상종하며, 서로 도우게 한다. 고로 생각건대 인간은 종교가 아니면 자립할 수 없고, 정치를 하는 자도 종교가 아니면 모든 인민을 교육할 수 없다. 개명한 나라는 이미 다 그렇다”라고 했다.(朝野新聞).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한 사회의 가치관은 그 사회의 주류종교에서 나온다. 종말론적 세계관에 바탕한 기독교는  그 가치관이 확실하다. 기독교를 주류종교로 받아들인 국가 치고 일류국가가 되지 않은 나라가 없다. 20세기 초 인류사회를 구원할 것처럼 등장한 공산주의가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망하고 만 것은, 공산주의를 받아들인 국가들이 모두 인류사회와 함께 발전해온 클래식종교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박영효가 지적한 대로, 어떤 정치일지라도 종교가 아니고는 모든 인민을 교육할 수 없다. 그래서 중국이나 북한 같은 공산주의 사회는 아예 ‘공산당’ 자체가 하나의 종교를 대신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치종교는 대표적 사이비이다. 따라서 그 근본 실체가 드러나면 그 사회는 오래지 않아 인민으로부터 배척된다. 지구상에 나타났던 전체국가나 독재국가는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소멸되었다.
◇기독교는 흔히 말하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강건하기를”(요삼 1:2) 바라는, 소시민 개개인이 무병장수하고, 만사형통하며, 잘 먹고 잘 사는 ‘축복’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복으로 세상을 의와 진리와 사랑이 넘치는 세상으로 바꾸는데 있다. 이것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하나님의 나리이다. 이 얼마나 고귀하고 헌신적인 사상인가. 역사적 기독교는 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오늘까지 선교와 교육에 혼신을 다해 온 것이다. 그런 기독교를 기복주의 종교쯤으로 여기는 무지한 자들이 있다. 이들은 사실상 인류사회를 파멸로 이끌려는 ‘악령’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기본 사명인 ‘말씀’과 ‘교육’과 ‘봉사’는 모두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바꾸려는데 있다. 인류사회를 위한 아름다운 헌신이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종종 이 아름다운 노력조차 부정한다. 기독교는 이 악령의 지배를 받는 세력과 싸우기 위해 세상에 있는 교회를 ‘전투하는 교회’라고 부른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모든 질서나 가치의 뒤에 신들의 세계가 있고 이들의 싸움은 질서들 사이의 싸움, 가치들 간의 싸움”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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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사회적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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