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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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없는 힘은 폭력이며, 사랑이 없는 정의는 무자비하며, 힘이 없는 사랑과 정의는 무의미하며, 정의가 없는 사랑은 불의요, 정의가 없는 힘은 독재다. 이 사랑과 힘, 그리고 정의를 분리할 수 없는 유기성이 평화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존재의 근거이기도 하다. 이것이 흔들리면 아무리 기회의 균등을 외쳐도 균등할 수 없으며, 제아무리 공정한 과정을 이야기해도 결코 그 과정은 공정할 수 없으며, 정당한 결과를 이야기해도 결코 정당할 수 없다.
사랑과 힘과 정의는 권력의 세 축이다. 어느 한축이 무너지면 그 자체로서 사회의 평화는 깨어지고, 아무리 주권자가 평화를 외쳐도 그 자리에서 기회와 과정과 결과는 불합리, 불공평, 부당한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깨어진 평화 앞에 신음하고 있다. 지금의 사회적 현상에서 누가 기회가 균등하다고 하며, 누가 과정이 공정하다고 하고, 결과가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권력의 그 어느 누구도 감히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없다.
인간의 사랑과 정의와 힘은 사랑하는 자로서의 신, 정의로운 자로서의 신, 전지전능한 자로서의 신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비록 인간에 의해 파악된 신의 사랑과 정의와 힘을 인간이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권력자는 자신이 가진 그 권력에 이 세 요소가 어느 한쪽에 치우침으로 기울게 하거나 함몰하게 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평화를 유지하는 사랑과 힘과 정의는 그 구조상 신적인 요소이다. 즉 하나님의 성부, 성자, 성령으로부터 유추된 것으로 성부 하나님의 정의로움, 성자 예수님의 사랑, 성령 하나님의 힘이 그것이다. 그것은 하나이며 동시에 셋으로 나타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성과도 일치한다. 성부는 성자와 성령을 관통하고 완전히 파악한다. 성자는 성부와 성령은 완전히 관동하고 파악한다. 성령도 성부와 성자를 관통하고 완전히 파악한다. 고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완벽한 개체로 계시면서도 완벽한 하나로 일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존재요 평화이다.
이것이 인간에게 유기적으로 위임될 때 창조세계에서 하나님의 평화는 완성된다. 인간은 그럴 책무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타락 이후 인간의 질서는 동물적 위계로 재편되었다. 동물의 세계에서 힘과 사랑과 정의에 의한 평화는 그 개념조차 성립하지 않는다. 적용시키고자 하는 것이 무의하다는 뜻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잡아먹는 것이 정의이며, 생태 환경에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고 그러하지 못한 자는 도태된다. 자연도태의 과정을 거쳐서 힘없고 약한 생명체는 사라지고 먹이사슬의 변형에 따라 생명 개체의 수도 달라진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존재 법칙이 아니다. 인간의 창조와 그 유지를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창조 윤리, 곧 인간의 존재 법칙은 동물의 존재법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돌보아야 한다. 부한 자는 가난한 자를 책임져야 하며, 배운 자는 그렇지 못한 자를 위해 지식을 사용하여야 한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를 도와서 건전한 사회의 일원이 되게 해야 하며, 도태되지 않도록 세워 주어야 한다. 이것이 창조의 윤리질서이다. 이 질서의 완성이 바로 인간에 의해 구현된 사랑과 힘과 정의의 유기적 관계의 평화 실현이다.
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답방을 한다고 해서 이 땅에 평화가 오지 않는다. 복지 자금을 풀어 대고 세금으로 직장을 찍어내도 이 땅에 산재한 젊은이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왜 모를까? 지금 청와대와 여당은 추락하고 있는 지지도와 국정실책을 언론과 과거 정권의 잔재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비록 그 말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 집권자이며, 바로 그런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서서히 등을 돌리는 국민을 나무라거나 원망하면 안된다. 우리 국민들이 그 만큼 어리숙한 사람들이 아님을 아직도 모르는가?
청와대와 정부는 국민의 불만과 이탈을 단말마적으로 보지 말고 누구 탓으로 돌리려고 하지 말라. 지금 이 현상은 어디선가부터 사회적 힘과 사랑과 정의의 긴밀한 관계가 어긋나면서 벌어지는 불협화음으로 인한 평화의 상실에 있다. 헤겔의 정반합의 원리는 바로 이러한 현상을 바로잡으려는 철학자의 고뇌의 산물이다. 헤겔이 철저하게 인정하고 인용했던 것이 반(反)이다. 그는 정(正)을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반(反)의 실체를 끌어 왔다. 그래야만 변증법이 멈추지 않고 진행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곳에서 정(正)이 반(反)을 무찔러버렸을 때 역사발전은 그 자리에서 중단되고 만다. 지금의 역사가 멈추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폐를 청산하는 것은 좋지만 보수를 청산하면 안된다. 그러면 진보도 설자리가 없다. 보수가 없는 진보가 있는가? 보수가 없다는 진보 그 자체가 곧장 보수가 된다. 아니면 멸절된 보수를 대체한 세력이 없으면 그 자체로 곧장 독재가 시작된다. 이것이 역사발전의 원리에 기인한 당연한 현상이다. 지금 집권세력은 바로 이런 길, 자살 골, 자멸의 길로 가고 있다. 어쩌면 이런 실수는 과거 두 보수 정권의 실패이기도 하다. 알면서도 왜 정권만 잡으면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하자는 것이 정당한 주장인지도 모른다.
청와대와 여당은 각성해야 한다. 국민을 무시하고 어설픈 돈 몇 푼이나 비상한 정치 이벤트로 마음을 잡으려 하지 말라. 지금 국민들이 얼마나 냉철한 눈으로 그대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무서운 잠재력을 간과하지 말라. 촛불의 민심이 항상 진보 쪽에만 있을 것이라는 오판이 가져올 무서운 결과를 던져주면서, 힘과 사랑과 정의의 평화를 허락하시고 그 성취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은혜가 황금 돼지해를 맞는 모든 독자들과 기독인들에게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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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고 / 2019년, 사랑과 힘과 정의의 유기체로서의 평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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