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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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오른 눈의 통증 때문에 보통 힘든 것이 아닙니다. 연말부터 받은 심적 부담과 육적 과로가 임계점에 달했고 이어진 신년축복성회 이후에도 계속 지방 순례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턴가 눈의 통증이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방대학 교수이고 안과 과장을 하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더니 중년을 앞두고 정밀검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녹내장 검사를 비롯해서 다 해 보았더니 안압만 조금 높을 뿐이지 정상인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쉬면 좋을 텐데 마틴 루터 킹 퍼레이드 행사와 3.1절 다큐 촬영을 위해 미국을 단 시일 내에 갔다 와야 했고 또 시차도 안 맞는데 계속 촬영을 하면서 눈을 혹사시킨 것입니다. 또 목요일, 금요일은 독립지사 최재형 선생 유적지 방문을 위해 러시아를 가야 하는데 눈에 통증이 와서 출국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화요일에 김복동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날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수요일 오후에 가려고 했습니다. 이 일을 안 집사람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그렇게 몸도 피곤하고 눈이 빠지려고 하는데 그런 곳까지 가야 되겠어요? 목사님이 안 가도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올 텐데... 목사님, 그러다가 진짜 눈이 빠져 버리겠어요.”

 

그래서 제가 집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생각해 보세요. 우리 교회가 김복동 할머니의 쉼터에 10년 이상, 매월 150만원씩 후원을 했고 작년에도 그 어른을 찾아가서 세계성령중앙협의회 이사장이신 안준배 목사님과 함께 특별 위로금을 전달하기도 했는데 당연히 가야하지 않겠어요. 그 분은 우리 민족의 한 맺힌 역사를 몸소 당하신 산 증인이고 고난의 흔적과 폭행당한 흔적이 온 몸에 남아 있는 분인데, 또 역사를 아는 국민의 한 사람이요 한국교회 목사로서 가야지요. 설마 눈이 빠지겠소.” 물론 마포의 쉼터는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이 마련해 준 곳입니다. 김삼환 목사님은 일찍이 위안부 할머니를 섬기는 혜안과 큰 마인드가 있으셨던 거죠.

 

마침내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장례식장에 가니까 김복동 할머니의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신 윤미향 목사님과 이사진들이 저를 알아보고 목사님, 와 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마음이 울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우리 국민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젊은 청년들이 김복동 할머니를 애도하기 위해서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 젊은이들이 역사를 아는구나. 고난의 역사를 잊지 않고 있구나.” 마음 같아서는 그들에게 일일이 악수하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는 눈빛을 보내며 나오니까 교계 기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방송기자들이 어떻게 목사가 이곳에 오게 되었느냐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토라인에 서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교회 목사로서 애도하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이분은 우리 민족의 광야에서 고난의 바람을 홀로 맞으신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인권과 자유, 평화 운동을 하신 분입니다. 민족의 어둔 역사의 밤에 별처럼 빛나는 분인데 끝내 그 별이 졌습니다. 우리가 그 별을 계속 비추고 또 그 분의 눈물을 흘리는 삶은 종지부를 찍었지만 여전히 우리가 울어야 하고 그 분의 울음을 계승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 분은 갔지만 저희가 대신 울 것입니다. 그럴 때 그 분이 주장했던 진정한 인권과 자유와 평화가 한반도 땅에 열매로 맺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포토라인에 서서 인터뷰를 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조문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곤하니까 가지 말라고 하던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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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검은 리본을 차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러시아를 가는데 러시아에 도착할 때까지는 차려고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은 그 분은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의 상처를 온 몸에 지녔던 어머니셨고 저 역시 민족 안에서 그 분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김복동 할머니, 당신은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어머니를 대신해서 제가 계속 울겠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흘렸던 어머니의 눈물을 꼭 닦아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김복동 할머니, 아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의 소천을 애도합니다. 어머니께서 비추신 별빛과 민족의 광야에 뿌린 눈물을 결코 헛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비록 어둔 밤이 다시 온다 해도 어머니의 별빛을 비추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새벽 닭 울음소리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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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목양칼럼] 어머니의 별빛과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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