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행복론 - 97
2019/02/14 13:4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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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부흥과 인재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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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공생애 기간에 구약 시대의 율법에 젖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알린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비유가 많은 것은 아마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 관념을 한 문장 안에 놓는 표현 방식이다. 가령 ‘A는 B다.’,‘A는 B와 같다.’와 같은 방식이다.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교사들은 전자를 은유라 하고, 후자를 직유라고 가르친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 해당하는 원관념을 그대로 표현하면 세상 사람들이 이해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조 관념에 해당하는 보편적인 일화를 예로 들어 하나님 나라를 이해시키셨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나온다. 그 중에 사마리아 땅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에 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강도를 당해 쓰러져 있는 유대인을 보고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다. 그러나 그 당시 유대인이 천시하던 사마리아인은 그를 여관에 데려가 치료하고 그의 숙박비까지 내 주고 간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시키기 위한 비유다. 하나님의 그 자녀에 대한 사랑이 원관념에 해당한다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위는 보조 관념이다. 율법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아름다운 마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그 자녀에 대한 사랑을 유추해 볼 수가 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땅에서 비유를 많이 사용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마리아인에게 구약시대부터 내려온 역사나 율법이 굳어진 언어를 사용하면, 그들이 이해를 못하거나 식상해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 같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과 그 자녀를 화목하게 하기 위해 희생양 역할을 해야 하고, 이는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사랑에 바탕한다는 말을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말해 봐야 설득력이 없다고 보신 것 같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의 일상에서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그것이다. 하나님의 인류 구속에 대한 원대하신 계획을 그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키겠는가.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유대인을 도왔듯이,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을 몸소 행하는 것임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시기다. 이와 같은 시기에는 사람과 사물과 세계가 초연결 네트워킹으로 이어지고, 융합형 메이커(maker)가 혁신적 파괴를 통하여 세계를 바꾸어 나간다. 3차 산업혁명이 정보화를 통해 개인이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자유자재로 이용하였다면, 4차 산업 혁명 시기에는 인간과 로봇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멋과 놀이가 있는 공간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앞으로 20년 후 AI 등을 활용한 기술적 특이점이 지나면 영구 에너지나 친환경 에너지가 생산되고, 융합 과학의 발달로 바이오 특이점이 지나면 뇌와 췌장을 제외한 신체의 장기들이 개인의 신체에 들어와 생명을 더 길게 연장시킬 수가 있다.
이와 같은 시기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융합형 인재들을 교회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기독교는 초기 교회 이후 2천 년 이상을 발전하여 왔다. 이와 같은 발전은 각 시대마다 그 시기의 상황을 혁신하여 가는 인재가 있어 가능한 것이었다. 구약 시대에는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모세·여호수아·다윗·솔로몬 등의 수많은 인재가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증명하였고, 신약 시대에는 베드로·바울·어거스틴·마틴 루터·장 칼뱅·존 웨슬리 등 수많은 인재들이 교회 부흥을 이루는 초석이 되었다. 한때 로마 카톨릭은 마틴 루터라는 인재로 인하여 그 강성함이 쇠하여졌고, 세계 강국이었던 스페인은 펠리페 2세의 신교도 탄압 정책으로 인하여 수많은 인재들이 네델란드로 건너가는 바람에 패망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율법의 틀에 사로잡혀 인재를 제대로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 새신자부에서는 기독교의 참된 본질을 적용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정해 놓은 율법의 틀 안에 새신자들이 합류하기를 기대한다. 바울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할례와 유대 교인끼리의 결혼과 유대 교인들만의 식사 문화를 강조하기보다는 성령이 기존의 율법을 무너뜨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가르침을 제시할 것임을 믿었다. 그리하여 유대 교인만의 공동체 문화를 넘어서 이방에까지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와 같은 인재는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21세기에는 새로운 세기에 걸맞는 인재가 있다. 사람들이 IT 혁명으로 인하여 현실과 가상 공간, 현실과 환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어도, 기독교는 새로운 상황에 걸맞는 진리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이는 이 천지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이고,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표적들과 함께 부활의 실체를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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