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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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비로산장에서의 하룻밤을 앞두고 가슴이 설렜습니다. 초등학교시절 소풍가는 날을 앞둔 마음과도 같았습니다. 국립공원에 계시는 우리 교회 안수집사님의 소개로 비로산장을 알게 되었는데 그곳은 걸어서 한 시간 반을 가야하는 아주 깊숙한 산장이었습니다. 저는 몇 분 장로님들과 함께 먹을 것을 싸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입이 쫙 벌어졌습니다. 아바타에 나오는 숲과 같은 신비로움, 아니 신성함마저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산장 주인의 말을 들어보니 아버지가 온갖 고생을 하시며 혼자 산장을 다 지었다는 것입니다. 주인과 나그네가 숲의 향기를 즐기고 그 추억을 공유하며 추억을 다음 대로 이어가게 하도록 하는 아름다운 동기를 가지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어서 따님이 산장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산장의 마당에서 몇몇 장로님들과 함께 고기를 구워먹고 이야기 천국을 이루었습니다. 큰 나무가 하늘을 가려줘서 낮에는 천장 같은 그늘이 되어 주었고 저녁에는 촘촘한 잎사귀들에 가려 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주인이 피워준 모닥불 연기는 자연스레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산장에 모기도 없었지만 과거 여름밤의 운치를 자아내주기 위하여 모닥불을 피워준 것입니다. 모닥불과 여름 숲의 향기가 원시적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런 향기를 맡으며 이야기를 하니 동심천국이 될 수밖에요. 삶의 역질주를 한 재앙을 경험한 셈입니다. 그런 원시림 속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반역을 빼놓고는 어떠한 말이나 행동도 죄가 아닐 정도로 순수함 그 자체로 느껴졌습니다.

 

해지기 전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새벽 2시가 되고 3시가 되어도 모닥불이라는 노래처럼 끝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하는 중에 여름 숲과 모닥불의 향기를 몰래 몰래 가슴 속에 훔쳐 넣었습니다.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왔기 때문에 저 자신에게도 삶의 갈증이 있었나 봅니다. 아니 삶의 근원과 원형을 향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는 유곡수성(幽谷水聲), 즉 깊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고막을 씻겨주는 듯 했습니다. 또한 아직도 꺼지지 않은 모닥불 연기와 숲의 향기는 저의 영혼을 씻겨 주었고요. 아니 웬 축복인지 비까지 내렸습니다. 태어나 이제껏 살아오면서 이런 깊은 산장에서 빗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속리(俗離)의 은혜였습니다.

 

속리산이란, ‘마을과 세속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입니다. 회색빛 콘크리트 도시에서 분주한 삶을 살 뿐만 아니라, 때로는 광장에 가서 검을 휘두르는 검투사 같은 삶을 살아왔던 저는 속리산 같은 깊은 산을 그리워 할 수밖에요. 그래서 깊은 산은 저의 영혼의 근원, 혹은 주님의 품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며칠 밤을 더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아니 문정희 시인의 한계령 연가에 나오는 구절처럼 저 역시 속리산 숲속에서 폭우가 내리거나 긴급한 조난을 당하여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어왔습니다. 간절한 속리산 연가를 불렀던 것이죠. 그러나 저는 다음날 내려와야 했습니다.

 

내려올 때 여주인이 배웅을 나오는데 선광현 목사님이 주인을 위해 기도해드리면 좋지 않겠느냐 해서 산길에서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고 나니 주인께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이곳에 오셔서 기도해주신 것은 생전 처음이라면서 말입니다. 어린 시절 그곳에 태어나 자랐고 또 아버지의 유훈을 따라 그곳을 지키며 떠날 수 없는 그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렸을지... 그런 곳에 살면서도 더 깊은 삶의 갈증이나 그리움이 있기 때문일는지... 그것도 아니면 내 기도 속에 숲과 모닥불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예수님의 향기가 그 분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는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산장을 내려왔지만 마음의 발걸음은 산장으로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녁 내내 훔쳐 온 숲의 향기와 여름밤의 모닥불 향기가 제 마음에 남아 이런 깨달음을 주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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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새에덴의 성도들과 함께 신앙의 추억을 공유하고 그 추억으로 대를 이어가게 하거라. 앞으로 총회와 한국교회에 순수의 시대를 열어 가거라. 아침이 되어 모닥불이 사그라진 것처럼 언젠가는 네 인생의 모닥불도 사그라지리니, 그때까지 주어진 사명의 길을 잘 달려가거라. 그리고 여름 숲 향기와 모닥불 연기보다 더 진한 예향(예수님의 향기)을 만리까지 전해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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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목양 칼럼] 여름 모닥불 향기를 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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