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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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초 지중해를 끼고 기독교가 한창 번창하던 시기, 아라비아에서 모하멧의 이슬람이 일어나 서진(西進)하자 오랜 역사를 가진 기독교 도시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하나 둘 이슬람에 점령되어 갔다. 635년에 다메섹이 점령되고, 638년에는 예루살렘이 점령되었으며, 639년에 에집트가, 641년에 알렉산드리아가, 697년에 카르타고가, 732년에는 두로와 베니게가 점령되었다. 그리고 이슬람은 시리아와 아나톨리아(소아시아)를 넘어 그리스와 발칸반도까지 진출했다. 모두 전통적 기독교 사회였다. 칼리프나 슐탄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이슬람은 점령지 시민들의 종교를 인정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 점령지의 이슬람 국가들에는 마을마다 이슬람 모스크의 미나렛만 보일 뿐, 기독교회의 십자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그 많은 기독교인들의 후예들은 어디로 가고 교회는 모두 어떻게 사라져 갔는가?   
◇1453년, 1천년을 넘게 버텨온 기독교왕국 비쟌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투르크에 점령된 후 투르크는 시민의 절대 다수인 기독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정책을 도입했다. 하나는 ‘세금’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왕립학교’제도이다. 오스만은 모든 신민들에게 일종의 주민등록제도를 실시하고 거기에 종교란을 두어 무슬림과 타종교인을 세금 정책으로 차별화 했다. 무슬림 보다 타종교인에게 모든 세금을 훨씬 높게 부과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세월이 지나면서 종교로 인한 불이익을 감내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하나 둘 무슬림으로 개종해 갔다. 지금도 일부 이슬람권에서 이같은 제도가 실행되고 있다.
◇둘째는 궁성 내에 엘리트 교육을 위한 ‘데브시르메’(Devsirme)라는 제도를 만들어 기독교 집안 10대 소년들을 징집하여 이슬람으로 개종시켜 교육시킨 것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노예 신분으로 끌려왔지만, 학교 등록과 함께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이슬람의 샤리아법, 아랍어, 페르시아어, 터키어를 공부하고, 수학, 음악, 역사, 서예 등의 과목을 공부하였다. 이 왕립학교에는 등위가 있어서 정예 고급관료는 상위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다. 중위에서는 사관학교와 같이 군(軍)에 복무하는 '예니체리' 대원과 포병, 기병 및 근위병 장교를 양성했으며, 하위에서는 행정기구에 소속된 관료들을 배출했다. 이들은 모두 황실의 후견으로 어디서나 굉장한 후대를 받았다. 그리하여 이 왕립학교 출신들이 사실상 관료조직의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인들도 자녀들의 출세를 위해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반대하지 않았다.
◇왕립학교 출신 가운데 군사교육을 받은 '예니체리'는 현역에 있는 동안에는 결혼도 금지되었고, 또 세금도 면제되었으며, 예니체리 사랑관 외에는 아무도 그들을 처벌할 수 없는 특권을 누렸다. 그들의 업무수행 능력은 매우 뛰어났으며, 16세기 초에 이르면 그들의 권력이 막강해져 슐탄의 후계 자리를 좌지우지 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수백년 간에 걸친 이 두 가지 정책으로 오스만 영역에서 교회는 모두 사라져 갔다. 오늘날 터키에는 약 3%의 정교회인들이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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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개종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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