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한국교회 위기극복: 새로운 교회연합방안 모색
2020/01/16 16:0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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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보수와 진보의 대립 교회적 정체성 상실
본고는 지난 1월 14일 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가 주최한 제1회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소장 정일웅 박사(전 총신대 총장)가 발제한 ‘한국교회의 위기극복: 새로운 교회연합방안 모색’을 일부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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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연합과 교회분열의 역사에 관한 성찰
 
1) 초기 선교사들에 의한 교회연합운동
초기 한국교회는 장·감·성을 중심으로 교단의 전통과 역사는 달랐지만, 서로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연합하고 협력하여 복음전파를 힘썼던 것이다. 선교사들은 그 당시 지역 분할 등으로, 복음전파(선교)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다가 1924년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 창립되었고, 다시 그 연합기관은 1931년 조선기독교연합공의회로 명칭을 변경하게 된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통치와 더불어 조선기독교는 탄압을 받게 되었고, 모든 조선 땅에서의 기독교 활동들이 정지된다. 이러한 일제 식민통치의 핍박 가운데서,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한국교회는 연합하고 있었다고 본다. 심지어 국가의 위기와 일제 식민통치 하에서 타종교와도 연합하여 독립선언문발표와 독일운동에 동참하였다.
1919년 3월 1일의 독립선언문 발표는 전체 33인 중 16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참여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8.15해방 이후, 한국교회는 교회의 재건 기에 벌써 1946년 9월 ‘한국기독교총회’가 시작되었고, 그 총회의 대표들이 1948년 8월에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WCC 세계총회에 참석하여 세계적인 개신교 연합운동에 참여하는 열성을 발휘한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는 남북분단과 함께 6.25 전란을 겪으면서, 북한 공산당이 종교자유를 보장하지 않았고, 기독교를 핍박함으로써 북한에 있던 대부분의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종교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대거 이주해왔었다. 그것이 대한민국(남한)에서의 복음전파를 더욱 왕성하게 하였고, 한국교회가 수적으로 크게 부흥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해방 후, 한국교회의 재건운동과 함께 먼저 신사참배에 굴복한 자들의 회개가 촉구되면서, 동시에 이전에 잠재해 있던 신학 사상에 관한 논쟁이 발생되었다.  그 때문에 한국교회는 벌써 초기에 진보와 보수의 뼈아픈 교회분열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2) 1950년대의 한국교회 보수와 진보의 분열역사
1950년대에 이르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는 성경관의 차이로 인한 신학 논쟁이 일어났고, 마침내 교단이 분열하는 아픔을 겪게 된다. 그것이 한국기독교장로회(1953)의 분리사건이다. 물론 그보다 더 일찍 1946년 부산/경남지역의 장로교회들이 신사참배(참회)문제를 제기하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로부터 독립된 교단으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는 WCC 회원가입 문제가 논쟁되면서, 또다시 통합과 합동으로 분리된다. 그 당시 WCC가 공산화된 소련에 러시아정교회를 회원으로 받으면서, WCC가 용공주의적인 입장을 가졌다는 소문이 퍼졌고, 특히 공산주의 사의 대립으로 남북이 전쟁을 치르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교회의 지도자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그 사이에 이미 1946년에 분리독립 했던 고신교단과 예장합동교단은 1960년에 서로 합동하게 된다. 그러나 1963년 9월 다시 예장 고신교단이 환원함으로써 원상태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들 두 교단은 신학 사상적으로는 분리해야 할 명분이 없다.
60년대에 불어닥친 보수와 진보 사이의 신학적인 갈등은 결국 성결교회와 감리교회에도 영향이 미치게 되어, 성결교회는 기독교 성결교단과 예수교 성결교단으로 분리되었고, 또한 감리교회도 분리의 영향을 받았으나, 후에 다시 합동하게 된다.
여기서 한국교회는 크게 진보교회와 보수교회로 나누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 이후 진보교회는 초기부터 8개 교단(기장, 감리회, 통합, 기성, 복음교회, 구세군, 성공회, 정교회, 순복음회연합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물론 1997년 여의도순복음 교단은 한기교협(KNCC)에 회원으로 뒤늦게 가입하게 된다. 그러나 보수교회는 이렇다 할 교회연합운동을 전개하지 않았다. 물론 세계교회의 보수와 진보가 분리되는, 특히 미국교회의 흐름에 따라 한국의 보수교회, 즉 대한예수교장로회는 미국의 극단적인 근본주의적인 교회의 지도자들이 주도하는 연합운동(ICCC)과 연결하여 진보교회의 연합운동과 대결하였지만, 역시 열세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한국교회 내에서의 보수교회들은 연합운동을 포기한 채, 개별적인, 그리고 개 교회적으로 복음전도운동을 전개하면서, 개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집중하였다.

3) 진보와 보수로 분열된 각각의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실상에 관한 성찰  
현재 한국교회는 진보와 보수교회로 분리되어 각각의 교회연합기관을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먼저 진보교회 연합운동 역사는 1946년에 출발한 한국기독교연합회의 발족에서 시작된다. ”한국기독교협의회”란 이름으로 활동해 오다가, 1970년대에 이르러, 아마도 교회의 존재와 중요성이 인식되었는지, 협의회의 명칭에다 ”교회“를 삽입하여 오늘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로 불리게 된다. 특이하게도 이 연합기관은 주로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 즉 복음전파의 사명실천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교회의 외적인 일, 즉 사회적이며, 국가 정치적인 일들에만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정치단체와 같은 모습을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다. 
지난 70~80년대로 오면서도 NCCK는 한국의 산업화와 현대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특히 그 당시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하여 투쟁하였고, 정권이 저지른 인권침해문제를 비판하며,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게 되었으며, 1987년 정치적인 민주화가 선언된 이후 그 연합기관은 민주화운동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보수교회들은 오히려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 세우며, 이때까지도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활동의 연합운동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전 국민을 향한 그리스도복음의 전도운동에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수적으로 크게 성장된 교회를 이루게 되었다.
생각하면 이것이 한국교회의 진보와 보수가 각각 다른 길을 걷게 된 모습이라 할 것이다. 진보교회는 매우 정치비판적인 성향을 드러내면서 사회개혁을 전제하여 인간을 섬기는 사회운동의 방향으로 질주하였으며, 보수교회는 개인의 영혼구원을 중히 여기고, 오직 개 교회로 모이게 하는 복음전도운동의 방향으로 질주하였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한국교회의 다수인 보수교회와도 마땅히 나누어야 할 성도의 교제는 전적으로 외면한 채, 독자적인 행보를 지속하고 있는데, 오히려 타 종교와 더 어울리며, 종교다원주의적인 태도를 보일뿐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기독교신앙의 정체성이 매우 진보적이어서, 한국보수교회 신학자들의 비판적인 논쟁을 유발시키고 있으며, 진보와 보수사이는 오늘날 그 틈새는 더욱 벌어진 모습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오늘날 정말 진보교회연합체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간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하여 인권문제를 그토록 목숨을 내걸면서까지 비판하며 대항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북한의 3대 독재정치 체제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북한 동포들의 인권탄압문제에 대해서는 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그간 한국 보수교회들의 연합기관으로 역할 해 온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도 오늘에 이르러 한계에 직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래 한기총의 태동역사는 KNCC가 1988년 2월 29일,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 선언문”을 발표한 것에서 동기를 부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 선언문은 분단된 남북한의 통일문제를 신학적인 주제로 삼아 한국교회에 통일의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로 평가되지만, KNCC가 이렇게도 중대한 남북통일선언문을 한국 보수교회지도자들과는 한마디 상의 없이 저 북한기독교대표(조선기독교연맹)들과 수년 전부터 해외에서 서로 만나 협의하고 논의하여, 1995년을 남북통일의 해로 못 박아 선언한 일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태도가 분명하며, 이미 지나치게 저 북한 통치이념에 동조한 것 같은 의구심을 부정할 수가 없다.
특히 통일선언문의 요지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희년개념을 끌어와서 1995년을 남북통일의 해로 목표하여 해석 적용한 모습은 마치 지난 1992년 12월말, 시한부종말론 자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해로 정하고 그것을 기다렸던 모습과도 흡사함을 피할 수가 없다고 본다.
결국 진보연합체의 행위는 한국의 보수교회들이 남북통일과 북한선교의 과제를 기독교적인 과제로 인식하는 통일의식을 일깨워 주었으며, 또한 한국의 보수교회들이 결속하여 한기총(CCK)이란 연합체가 태동하는 게기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 90년대에 이르면서, 한기총은 극심한 기근으로 굶주림에 처한 북한동포를 돕는 중요한 섬김의 과제를 수행하는 일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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