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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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 판에 새기라.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7:1-5)

 

말을 지킨다는 것은 말을 빼앗으려 하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씨 뿌리는 비유가 있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 돌밭에 떨어진 씨, 가시밭에 떨어진 씨, 옥토에 떨어진 씨, 그 중에 가장 좋지 않는 상태는 길가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씨들은 그래도 싹이라도 틔우지만 길가는 싹을 틔우기도 전에 새가 와서 먹어버리기 때문입니다.(8:11) 새는 곧 마귀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지키고 간직하기 위하여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자신의 마음이 길가와 같은 것인지 아니면, 옥토와 같은 것인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길가와 같은 마음이라면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간직할 수 없고 간직할 수 없기 때문에 지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면 왜 길가와 같은 마음이 됩니까? 길가는 사실 밭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밭이라면 우선 갈아엎어야 하고 돌멩이를 추려 내야하며 때때로 잡초를 제거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거름도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길가는 갈아엎을 필요가 없습니다. 갈아엎는다면 오히려 다니는데 불편한 것입니다.

 

이처럼 길가는 한 번도 갈아엎어보지 않는 마음입니다. 10:12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묵은 땅을 갈아엎으라고 하십니다. 묵은 땅은 딱딱하게 굳은 땅입니다. 누구 밑에도 있지 못하고, 순종해보지 않은 자기 뜻, 자기 고집,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 완고한 마음입니다.

 

이런 사람이 길가인 것입니다. 그래서 옥토가 되기 위하여 먼저 땅을 갈아엎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내 고집, 내 생각 부인하고 순종하는 것이 갈아엎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에게 순종할 수 있는 환경을 주십니다. 갈아엎도록 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가정에는 남편, 아내를 주셨고 자녀들에게는 부모님을 주셨으며 회사에는 상관과 동료들을 주셨습니다. 경작된 밭 곧 순종적인 마음밭에 성령께서 말씀의 씨를 뿌려주십니다. 그러면 마음이 그 씨를 간직하게 됩니다.

 

간직하기 위하여 두 번째 해야 할 일은 말씀을 눈동자처럼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 신체 구조에서 가장 예민한 부분이라면 눈일 것입니다. 손이나 발에 티끌이 묻으면 예민한 사람이라면 바로 느끼겠지만 보통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아에 음식찌꺼기가 있으면 다소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말을 할 수 있고,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또 코에 먼지가 조금 끼면 딱지가 생기고 불편하겠지만 그런대로 숨을 쉽니다.

 

그런데 눈동자 안에 먼지나 작은 티끌이 들어가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몹시 불편하여 온갖 수단을 사용하여 어떻게 하든지 그것을 빼내려 애를 쓸 것입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지체한다면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릴 것입니다. 그것은 눈동자가 그만큼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32:10). 신앙인들을 눈동자처럼 보호해주시고 지켜 주신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주님이 신자들을 사랑하셔서 눈동자같이 보호하시니 우리도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눈동자처럼 지키려고 애를 써야합니다.

 

눈동자처럼 말씀을 지키지 못하여 망한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말씀을 지키지 못하여서 에덴 낙원을 잃어버렸고(3:24), 사울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버렸으므로 왕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삼상15:22-23). 아버지 다윗을 저주하였던 시므이에게 솔로몬은 그가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하지만 시므이는 삼 년 째 되는 해에 가드왕 아기스에게 달아난 종을 잡으러 기드론 시내를 건너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왕상2:36-46).

 

이처럼 말씀이 곧 예수님이며 우리가 말씀을 놓치면 곧 생명을 놓치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눈동자 같이 지키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눈동자처럼 말씀을 지킬까요? 14: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영, 곧 성령을 풍성하게 주시고 그 성령께서 지키게 해주십니다. 자신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지키고 행하게 하십니다.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세 번째 할 일은 손가락에 매며 마음 판에 새기는 일입니다. 손은 우리가 행동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밥 먹을 때 손이 필요하고 일을 할 때 손이 필요하며 몸을 씻을 때 필요합니다. 사람과 교통할 때 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손가락에 말씀을 매라고 합니다. 그런 일들을 할 때 무작정하지 말고 먼저 말씀에 합당한지 그렇지 못한지 살피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고 우리의 피가 되고 살이 되기 위해서는 지식을 넘어서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에 새기려면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행한 그 말씀이 우리 마음 판에 새겨집니다. 새겨질 뿐 아니라 점점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 밭을 살피고, 눈동자처럼 지키며, 행함으로 마음 판에 새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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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말씀을 지키며 간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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