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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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기후는 사람이 살기에 매우 좋은 기후를 유지해 왔다. 숱한 역사의 기후들이 어렵기는 했지만 삶과 죽음의 계절 속에서도 봄, 가을, 여름, 겨울의 뚜렷한 4 계절을 통해서 삶과 농사의 정서들을 아름답게 유지해 왔다. 이름 하여 삼천리금수강산이라 아니 하였던가? 서로의 신분차이와 약육강식의 싸움과 침략 그리고 일제의 혹독한 역사의 살인적 삶을 살기도 하였고 지금은 허리 잘린 분단의 삶을 살고 있다. 인간들이 존재하는 한 자연은 여전히 폭력 아래 있고 자연이 파괴다고 오염되어 썩어 갈수록 인간의 삶도 그만큼 죽음을 향하여 갈 것이다. 사랑과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 넘치는 삶을 기도하지만, 막상 표출되고 쌓여 가는 것은 거짓과 불의의 산만 높아만 간다. 값없는 공기만큼은 마음대로 마실 수가 있었지만 인간들의 탐욕으로 만들어진 기술문명의 현실은 생명이 숨 쉴 수 있는 희망의 싹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겨울도 반절 이상이 가고 이제 곧 봄바람이 따듯한 남쪽으로부터 서서히 불어오고 있다. 봄은 희망과 생명의 계절이다. 북미 대화가 겉돌고 껍데기 빈 소리만 들리고 남북의 관계도 깊이 꾀인 상태이다. 여전히 남남 갈등과 발목 잡는 정치계와 정규직과 비정규직과 함께 빈자의 대물림이 계속되는 양극화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다. 저출산이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다. 결혼도 있는 자들이 하는 것으로, 자녀를 생산할 수도 있는 현실로 확대 생산되는 분위기가 커져만 가고 있다.
봄이 오기 전에 이러한 사회적인 불평등의 뿌리를 뽑는 시작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굳어져버린 경제 구조악의 뿌리를 뽑아 가는 정치와 시민운동들이 구체적으로 일어나고 이러한 운도의 중심에 역사의 변혁을 이루 온 민중들이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 교회는 죽음을 이기는 부활과 생명의 복음을 말한다. 그런데 정말 생명의 복음을 말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사회 구조악에 침묵하며 적당히 사람들의 비유를 맞추고 타자는 비판하면서 반사 이익을 누린다. 필요한 것은 자기 밥벌이의 수단과 방법으로 삼고자 하면서 타자의 존재를 끌어내리고자 한다. 교회의 진정한 개혁과 예수의 혁명적 복음 선포는 없고 잔꾀만 발달해 있다. 여전히 가난하고 억울하며 힘없는 민중들과는 거리가 멀다. 민중들을 말하는 자들도 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 민중을 말과 생각의 유희로 치부한다.
어느 시대나 그 사회의 삶의 중심에서 벼두리, 주변으로 밀려나 있는 민중들이 우글거린다. 악착스럽지 못하고 꾀부리지 못하며 아부와 아첨할 수 있는 거짓도 행할 수 없어서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민중들이 허다하다. 최소한 그 사회 속에서 인간의 권리를 누리고자 하는 마지막 소리마저 짓밟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역사의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역사의 봄은 민중의 살과 피를 먹고 꽃 피운다.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왕과 대통령, 임금과 통치자는 민중들이 만든다. 잠든 민중이든 깨어 있는 민중이든 그들이 원하는 상을 만든다. 공권력에 의해서 죽어 간 여순 민중들 사건의 무죄는 이제라도 당연한 결과이다. 인간들이 그나마 추구해 온 가치와 삶의 온전한 의미의 추구는 삶에 대한 존재의 근거와 본질을 지키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인간들이 계획하고 생각하는 것들은 거의가 미완성이거나 빗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봄이 오려면 겨울에 생명의 잉태를 하고 생명의 싹이 발아되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봄은 분명히 우리 앞에 온다. 역사의 봄도 역시 반드시 오고 만다. 개인이든 역사이든 이 봄을 기다리며 탄식의 기도를 하며 울부짖는다.
이 한반도에 계절의 봄이 오기 전에 평화의 생명이 잉태되고 자랄 수 있는 남북한 모두의 준비 된 마음들이 필요하다. 미국도 이제는 세계 패권도 중요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도 필요하지만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의 봄기운과 환경을 도와주어야 한다. 저출산과 양극화는 하나의 문제이다. 탐욕적이 인간들이 사는 사회에서 물고 뜯으며 상호 전쟁을 하는 인간들의 삶은 평화보다는 경쟁과 갈등의 상태로 살게 된다. 히말라야의 높은 산봉우리를 등반하여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우리에게 도전의식을 주고 새로운 용기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 산에 묻히는 생명을 담보하기도 한다.
안나푸르나의 등반 과정에서 눈사태를 맞아 소식을 알 수 없는 교사들의 생사가 매우 안타깝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우리가 잊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메마르고 생명의 문은 닫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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