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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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서, 고린도로 갔다.” 바울이 아테네를 떠난 것은 아레오바고 언덕에서의 그의 설교가 아테네 사람들의 냉소거리가 되었다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터. 훗날 고린도 교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바울은 회상한다. “내가 여러분에게로 갔을 때에, 나는 약하였고, 두려워하였고, 무척 떨었습니다.” 철학과 변론술에 능한 아테네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지성에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여겼었던 바울. 주류였던 스토아 철학이라면 자신이 없지 않았던 바울의 “훌륭한 말이나 지혜”는 실패를 맛본다.  
그의 다짐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소상하게 드러난다. "나도 여러분에게 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에,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나의 말과 나의 설교는 지혜에서 나온 그럴 듯한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보여 준 증거로 한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둔 것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국제도시 고린도는 선교거점이 되기에 필요한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안식일 마다 회당에서 유대인과 그리스인을 설득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맞서고 나선 것이다. 마침내 바울은 그의 옷에서 먼지를 떨고서, 말한다. "여러분이 멸망을 받으면, 그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책임이지, 나의 잘못은 아닙니다. 이제 나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겠습니다."
고린도에서의 역풍도 아테네 못지않았다. 어느 날 밤 환상 가운데 주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을 터이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서 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
이런 일이 있었다. “갈리오가 아가야 지방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유대 사람이 한패가 되어 바울에게 달려들어, 그를 재판정으로 끌고 가서 ‘이 사람은 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며 처벌을 요구했다. 그러나 총독은 그들을 재판정에서 몰아냈다. 그들은 회당장 소스데네를 붙들어다가 재판정 앞에서 때렸다. 그러나 갈리오는 이 일에 조금도 참견하지 않았다.
당시 고린도를 포함하는 아가야 지방의 총독 갈리오는 세네카의 형이었다고 한다. 본디 이름은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노바투스, 그도 스토아 철학에는 일가견이 있는 인물로, 재판관과 피고의 관계였지만, 바울과 갈리오 사이에서는 적어도 그럴듯한 논쟁이 오갈 수 있었다고 짐작해도 좋을 것이다.      
바울 시대 로마 황제들의 이름들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칼리굴라, 글라우디우스, 네로. 그들이 다스리는 로마의 여러 도시들은 악으로 넘쳐났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고 있는 세네카의 작품 <노여움에 대해서>에서는 그 퇴폐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광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민중은 경기장에 몰린다. 들여다 보노라면 사람들의 숫자 만큼의 악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평상복을 입은 자들에게도 평화는 없다. 작은 돈을 벌기 위해서 다른 이를 파멸하는 일에 동참한다. 아무도 남이 손해 보지 않는 일에는 내기를 걸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을 미워하고 불행한 사람은 무시한다...모순된 욕망에 흔들리는가하면 작은 쾌락이나 이익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잃기를 원한다.” 이 글은 형 갈리오에게 보낸 편지 글이기도 했다.   
우리는 세네카가 형 갈리오에게 쓴 또 한 통의 편지를 읽을 수 있다. 그의  명작 <행복한 인생에 대해서>에서다. “갈리오 형님, 누구인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기란 누구에게나 오리무중입니다. 행복한 인생에 도달하기란 쉬운 노릇이 아닙니다. 누구나 한발만 잘못 디디면, 행복한 인생을 찾아 서두를수록, 거꾸로 멀어지기만 합니다.” 형이 아우에게 무어라 회답을 썼는지는 알 수 없다. 형과 아우 모두 자살로 일생을 마감했다.  
단테의 <신곡>에서, 베리길리우스의 인도를 따라 지옥에 들어간 단테는 첫 번째 골짜기에서 세네카를 만난다. ‘림보’로 알려지고 있는 그곳은 선량하지만 세례를 받지 못한 영혼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형벌은 가해지지 않으나 하나님을 뵐 수는 없다고 했다.
단테는 56세를 살았다. 만약 30년을 더 살아서 <신곡>속편을 썼다면, 천국 어디에서 바울과 세네카 그리고 단테 자신이 함께 하는 장면을 그렸을지도...?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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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세네카 그리고 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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