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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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이해하고, 우리의 죽음과 부할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중요한 점은 “연대성 원리”이다. 칼빈은 이를 “본드”(Bond)라고 했고, 전통신학에서는 “언약” (Covenant)이라는 말을 사용해왔다. 인간은 아담과 연대성, 그리고 새 아담과의 연대성 안에서 아담과 함께 죽고, 새 아담과 함께 살아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이 사실을 부인한다고 해도 죽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다시 살고 싶다는 희망은 버릴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 이 죽음과 내세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고 있지만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믿기가 쉽지 않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믿지 못했다. 그래서 책망을 받았다.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한편으로는 제자들이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 우주적인 비전과 소망을 보여주시고, 사명을 주신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막달라의 마리아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이들은 각각 예수님을 잃고 슬퍼 울고 있는 자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이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10절에 나오는 “제자들은 예수께서 살아 나셨고, 그 여자에게 보이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고 했다. ESV에서는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They would not believe it)라고 번역하고 있다. 누가복음에서도 같은 심성으로 “이 말들이 사도들에게는 허탄한 듯이 들려서 그들은 그 여자들을 믿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다(눅 24:11). 두 무리들은 다같이 믿고 싶은 마음이 없고, 의도적으로 믿음을 회피하려는 부정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말이다. 이 여자들의 말이 진정성이 없어 보여, 그 여자들을 믿지 않았다고 했다. 12-13절은 아마도 누가 복음에 기록된 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여전히 두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부르셨고, 그들도 처음에는 그러한 소망을 가지고 따른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그들의 마음은 변했다.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야로 알고 그가 성공하는 날 그들은 예수님의 좌우에 앉는 꿈을 가지고 따라 다녔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이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고백을 한 뒤부터 제자들에게 자신은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많은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메달려 죽은 후에,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일러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다.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서로 싸웠다. 예수님은 무려 세 번이나 반복하여 그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예고하셨지만 그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말씀대로 그가 부활하신 사실을 일러 주어도 이들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고. 믿지 않았다.
이러한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께서는 믿음이 없고, 마음이 완악하다고 꾸짖으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신 사실을 다른 제자들로부터 들었지만 그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제자들은 마음이 완악한 것이다. 여기서 완악하다는 말은 우리 사전에는 “성질이 억세게 고집스럽고 모질다”로 정의하고 있는데, 헬라어로 “스크래로카르디아”()라는 말은 그런 의미보다는 영역본에서처럼  “hardness of heart”라는 의미이다. 헬라어 “스크래로스”( 굳다, 딱딱하다)라는 말과 “카르디아”(καρδια, 심장)이라는 말의 합성어로 사람의 심장이 굳고 딱딱하다는 말이다. 사람이 유연성이 없고 자기 생각이나 고집만을 주장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생각을 받아들일 융통성이나 여유가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말라 굳은 빵이 돌처럼 딱딱하여 잇빨이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마음이 굳어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믿음의 씨가 싹이 나거나 자랄수 있는 마음 밭이 안 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는 데도 이들은 믿음이 없고, 마음이 굳어서 이 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 생각이나 편견이나 주장과 지식이 자기 머리에 박혀 있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일 여백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이들을 책망하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들의 눈을 온 우주로 향하여 뜨게 하시고, 모든 피조물,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을 바라보게 하신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온 세상에 다니며 모든 피조물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15)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마음이 완악한 제자들을 꾸짖으셨다. 그러나 꾸짖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사명을 주셨다. “온 세상을 다니며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다. 이 본문을 헬라어 본문대로 번역해보면 “모든 우주()에 나아가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이다. 한글 성경에는 “온 세상에 나아가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여기서 온 세상과 온 우주라는 말은 의미가 다르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지구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우주, 그러니까 해와 달과 별 등 지구를 벗어난 모든 항성과 유성까지도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유의 세계에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이 달에도 가고, 화성에도 가는 문이 열리고 있다. 그곳에게 가서도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그 대상이 누구인가? “모든 피조물”이다.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물들, 그것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모든 피조물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 불순종한 아담에게 내린 저주는 아담은 물론 모든 피조물, 동식물 모두에게 내리는 저주였다. 사실 말 못하는 식물이나 동물들이 무슨 죄가 있으리요마는 아담과의 연대성 아래서 아담과 함께 불순종의 죄벌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러한 자연만물에 대하여 피조물이 허무한 것에 굴복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 자신도 썩어짐의 종노릇하는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이르는 것”(롬 8:18-25)을 바라는 것이다. 모든 피조물들의 사명은 하나님의 분봉왕, 인간을 섬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무런 의미없이 사탄의 종들을 어쩔 수 섬기게 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이러한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께서 지으신 처음의 목적대로 하나님의 아들들을 섬기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에 동참하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썩어짐의 노릇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이 이들의 간절한 소원인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는 비록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피조물도 함께 들어야 할 복음, 복된 소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은 제자들이 온 우주에 나가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 복된 소식을 전하라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사람이 한 번 죽으면 살아날 수 없다는 이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아무리 보고 들은 사실을 말해주어도 믿지도 않고, 믿으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이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을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고 있다. 이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신다. 이 지구를 넘어 우주를 바라보게 하시고, 눈앞에 있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는 모든 피조물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나가서 “유앙겔리온”(), 곧 복음, 복된 소식, good news를 알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죄와 죽음의 권세가 무너져 아담의 언약적 저주가 풀리고, 새 아담 예수그리스도의 영원한 자유와 생명과 평화의 세상이 열였다는 복된 소식을  온 우주에 나가, 모든 피조물들에게 전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눈을 열어 주시고, 마음을 열어 온 우주와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바라보게 하신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부활하여 사망 권세를 다 깨뜨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여셨다는 복된 소식을 전하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어서 대단히 심각한 말씀을 하신다.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고,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을 것이다.”(16).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 만난 소식을 듣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 그래서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계속 이들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정죄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세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새 하늘과 새 땅의 백성이 됨을 인증하는 인증식이다. 아울러 이들을 저 우주에까지 나아가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할 선지자임을 성령으로 인치시는 성령세례, 곧 선지자 위임식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여전히 죄 가운데 남아있고, 썩어 없어질 피조물들의 종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믿고 세례받는 자에게는 표적을 주겠고 약속하신다. 악령을 몰아내는 권세, 모든 사람과 마음을 통할 수 있는 방언, 심지어 뱀과 같은 피조물과도 어울리는 평화, 병자들을 고치는 능력, 이 모든 선물을 표적으로 주신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마치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주신 마지막 날의 비전을 연상케 하시는 말씀 같다(사 11장).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전이 높이 들린 산 위에 서고, 그곳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백성들이 그곳을 향하여 말씀을 받으러 나간다, 이때에는 온 세상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쳐, 마치 이리와 어린양, 표범과 어린 염소, 암소와 곰, 어린 아이와 뱀들이 함께 어울려 살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으며,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는 것과 같은 세상, 곧 평화의 세상, 평화의 낙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이다.
마가는 바로 제자들이 온 우주에 나가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이루어질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종말의 비전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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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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