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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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지난주, 9월에 있을 총회 준비를 위한 지역 간담회를 했습니다. 지방을 내려가면서 갑자기 고() 박정하 장로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아들인 박희태 집사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박집사님 말씀이,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내일이 팔순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랑 산소에 가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저도 대구에서 오전 행사를 마치고 올라가는 길에 금산에 있는 묘소를 들리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약속대로 다음날 오후 박정하 장로님의 묘지에 꽃다발을 헌화하고 권사님과 집사님을 위로하고 왔습니다.

 

저에게 있어 박정하 장로님은 정말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으로 만나게 된 은인이십니다. 저는 젊은 나이에 총회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박정하 장로님께서는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총회장 후보 나이를 낮추도록 법을 바꾸고 직선제로 바꾸는데 앞장서셨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분이 돌아가실 날을 알고 그렇게 서두르셨는지 참으로 의아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총회와 한국교회에 정말 시기적으로 제가 꼭 필요한 상황인 듯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시 이런 인문학적 상념에 젖어 들었습니다. “, 인생은 무엇인가.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삶과 죽음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몇 년 만 더 사셨어도 팔순예배를 함께 드리며 축하해 드릴 텐데... 누가 시키지도 않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장로님은 왜 그리도 나를 위해 열심히 뛰다 가셨는가.” 그렇게 보면 저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저 역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교단과 한국교회 세움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뛰고 있으니 말입니다.

 

묘소에서 내려오는데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흠뻑 땀을 흘렸습니다. 땀을 흘리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요, 살아 있으니까 저는 사명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박정하 장로님처럼 저를 위해 길을 열어주시고 도와주신 분도 계시지만, 간혹 저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저로 하여금 겸손하게 저의 길을 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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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여름과 가을 사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가을과 겨울 사이를 거닐 것이고 마침내 저도 박정하 장로님처럼 저의 사명을 다 마치고 겨울강을 건널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여름입니다. 저기 맑고 푸른 강이 풀잎처럼 누워 흐르고 있지 않습니까? 저 강을 건너야 오곡백과 풍성한 가을을 맞게 될 것입니다. 저는 가을에 그 풍요의 열매를 제 손으로 직접 거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손으로 그 영글 영글한 열매를 주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그 열매를 거두고 나면 들녘의 풍요를 나르던 가인들의 노래도 멈출 것이며 저문 광야에 찬 서리가 내리고 나면 홀연히 고요한 정적이 저의 삶을 덮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억새들의 하얀 머리털들이 바람에 부딪치며 겨울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저도 마침내 겨울강을 건널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여름에 더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엘리야 때처럼 숨겨 놓은 7천 명의 동역자들을 저에게 붙여 주셔서 함께 당신의 도성을 지키게 하소서. 당신의 나라를 더욱 강성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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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고요한 정적이 삶을 덮어오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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