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140
2020/08/03 10:5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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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을 남겨주시는 그리스도(요한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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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전쟁이 없을 날이 없다. 전쟁은 살상과 파괴만 남긴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황폐함뿐이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한 정복자도 전쟁에서 패배한 피정복자도 다같이 평화를 갈망한다. 사람은 유사이래 지금까지 평화를 추구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평화가 없다. 로마의 황제 Caesar Augustus는 자기가 세계를 정복하고 이룩한 평화를 기념하고, 그 평화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리석으로 “The Ara Pacis Augustus” 라는 평화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그 제단은 지금도 로마에 가면 재건되어 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전쟁은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으며 평화는 없다. 우리는 인간은 누구나 어떻게 하든지 마음을 진정하고 평안을 누리고 싶어한다. 그래서 전쟁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 피난을 가려고 한다. 그러나 인간들 사이에 비뚤어진 관계가 정상화되지 않은 한 평화는 없다. 우리는 평화를 갈망하지만 평화의 길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리 주님은 바로 우리 인생들의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을 아셨다. 그래서 그의 평안을 우리에게 주려고 하신다. 우리가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신다. 주님이 주시고자하는 평화는 어떤 것인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끼친다는 헬라어 아피에미”(ἀφίημι) 라는 말은 용서하다” (forgive) “떠나다”(leave, depart), “계속 남아있도록 남겨둔다는 의미이다. 대개의 경우 사람이 죽으면서 자식을 남겨둔다, 혹은 유산을 남겨둔다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그래서 평안을 끼친다는 말은 평안을 남겨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번역하면 평안을 너희에게 남겨두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언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주셨는가? 바로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주신 말씀이다. 보혜사 성령을 주시고, 또한 평안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겨 주니, 내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으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라.”(27).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마치면 그의 제자 가룟 사람, 유다의 배신으로 군병들에게 체포되고, 공회와 빌라도 앞에 끌려가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죽게 될 것이다. 죽음을 앞둔 분이 자기의 평안을 제자들에게 유산으로 남기고 가신다는 것이며, 또한 그의 평안을 제자들에게 주시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평안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의 평안이 이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으며, 그 평안을 제자들에게 주시겠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죽음처럼 두려운 것이 없다. 사람은 죽음 이후의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지만, 사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인간은 죄인이고, 죽으면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평안하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과 완벽한 교제, 곧 거룩한 관계성을 유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관계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아들로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바르고 인격적이며 거룩한 관계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죽음 앞에서도 그 마음이 평안한 것이며, 그러한 평안을 오히려 제자들에게 주시고자 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도 그가 낙원에 들어갈 것을 아셨고, 같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어가는 사람에게 낙원을 약속하셨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23:46)고 마지막 말을 남기시고 평안히 숨을 거두셨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자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게 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평안이다. 죽음을 초월한 평안은 이 세상의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예수님은 빌라도도 두렵지 않았고,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유대인 군중도 두렵지 않았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예수님은 그의 내면에 더 깊은 평안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안을 어떻게 주시는 것인가?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면 결코 이 세상에서 평안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려면 사람은 자기의 죄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후, 부할하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처치하셨음을 증명해 보이셨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의 권세 아래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 사람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누리셨던 하나님과의 평화를 우리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남겨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은 결과적으로 그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는 길을 여시겠다는 뜻이다. 우리가 진정 우리 속에 평안을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 화해하고 화평해야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사람들과 화해하고 평화의 관계를 가질 수 있다. 흔히들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자기의 가정이나 자기 자신의 평화를 지키고, 유지하려면 기본적으로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힘이 돈이나 사회적인 지위나 학식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사는 것이다. 힘과 돈이 가져다주는 평화에 대해서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큰 힘과 많은 돈을 가져도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정 반대의 길을 택하셨다. 강자에게 져 주고, 아예 가난하게 되신 것이다. 화해와 평화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먼저 내 주신 것이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는 어떻게 하든지 이웃과 더불어 공생공존을 이루려고 힘쓰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원수를 맺고 사는 사람이 있고, 만나는 사람마다 상처를 주고 사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만 있으면 온 세상이 시끄럽다. 이러한 사람과 맞서면 설령 이겨도 마음에 평안이 없다. 사람이 사람과 바른 관계를 가질 때 평화가 있다. 우리는 우리 안에 평안을 가지려면 예수님처럼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먼저 사람을 살리려고 해야 한다. 먼저 져주고, 양보하고, 비켜주는 것이다. 사람들과 싸우면 이겨도 기분 나쁘다.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져주면 마음에 찌거리가 남지 않는다.

 

우리는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목사와 장로, 교수와 학생, 사장과 사원, 대통령과 국민, 나라와 나라 사이에 서로 관계가 비뚤어지면 결국 모든 것이 파국으로 빠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관계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한다.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시간과 돈과 마음을 힘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손해보고, 먼저 양보해야 한다. 이웃을 이용해서 자기의 이익을 취하려고 하면 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 내 자존심만 내 세우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도 없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할 수도 없다. 성경의 중심주제는 관계이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만물의 관계가 하나님의 법대로 잘 유지될 때, 그곳에 평화가 임한다. 우리는 관계를 잘 맺고, 그것을 잘 유지하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 아무 일도 안하고 관계가 잘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손해도 보고, 무시도 당하고, 배신도 당해 봐야 한다. 관계를 살리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예수님처럼 희생을 해야 한다. 관계는 자기가 손해보는 가운데 상대방을 살릴 때, 참 순수한 사랑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살리셨다. 평화를 남기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다. 우리도 우리의 후임이나 후손들에게 평화를 남겨주는 선배, 부모, 선조들이 되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 형제와 원수 갚음을 물려주고, 분열과 분쟁의 씨를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 한번 원수 갚음을 대물림해주면 그 원수 갚음은 대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땅에 한 번 와서 한 번 살다가 가는데, 이 세상에 그리고 우리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겨야 할까? 평화를 유산으로 남겨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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