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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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못다 이룬 선교의 역사를 이어가는 아버지의 위대한 믿음을 존경합니다

 

예장합동 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요한기념사업회(회장 정계규 목사)에 선교후원금 5000만원을 전달했다. 요한기념사업회는 지난 2009년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에서 선교활동 중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정요한 군의 선교 정신을 잇기 위해 아버지인 정계규 목사(경남 사천교회)가 설립한 선교단체다.

 

소 목사는 지난 29일 자신의 SNS를 통해 고 정요한 군의 신실한 믿음과 섬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빛났던 그의 사랑과 희생을 되새기는 한편, 그의 선교 역사를 굳건히 이어가고 있는 아버지 정계규 목사의 위대한 믿음에 경의를 표했다. 앞서 27일 주일에는 정 목사를 새에덴교회로 초청해 간증집회를 열고, 아들에 대한 정 목사의 애틋한 사랑과 단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와중에서도 결코 흔들림 없던 신실한 믿음을 직접 목도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소 목사는 정요한 군에 대해 대학에서 스포츠를 전공할 정도로 매우 건강한 청년이었다고 기억하며, 보루네오섬 선교지에서 귀국하기 전 파도에 휩쓸린 3명의 여성을 구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며, 생을 달리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당시 정 군이 사력을 다한 덕에 3명의 여성은 목숨을 건졌으나, 정작 정 군 자신은 탈진으로 그대로 눈을 감고 말았다.

 

정 군의 위대한 희생이 무려 3명의 생명을 살리기는 했으나, 단 하나뿐인 외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은 쉽사리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뿐이다. 허나 소 목사는 이런 상황에도 정계규 목사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아들의 희생과 선교 정신을 계승코자, 이듬해인 20107요한기념사업회를 조직해, 선교사역을 이어나갔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 군이 마지막으로 활동한 보루네오섬 밀림지역에 아들의 이름으로 무려 네 개의 교회를 건축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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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루네오섬 은시카마을 st.John's chapel>

소 목사는 정 군의 신앙은 남달랐다. 주일 교회에 헌금할 돈을 다리미로 다려서 낼 정도로 순전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단기선교를 떠나기 전에도 마치 생의 마지막을 미리 아는 사람처럼, 자기 통장을 정리해 어려운 친구들에게 다 나눠줬다고 회고했다.

 

이어 요한군의 시신이 화물기에 실려서 고국에 돌아왔을 때, 인천공항에는 100년만의 폭설이 내렸다. 정 목사님께서는 아들의 장례식 때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아홉 가지 감사기도를 본받아, 거기에 한 가지 제목을 더하여 10가지 감사기도를 드렸다저는 그 기도제목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로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타국에서 잃었으니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고 아팠겠는가?”라고 함께 아파했다.

 

소 목사는 정계규 목사님은 아들의 영혼이 깃든 밀림지역에서 선교사로 헌신하며, 마지막 여생을 보내는 꿈을 꾸고 계신다저는 정 목사님의 신앙을 본받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한국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사명의 초심을 잃지 않고 걸어갈 것이다고 다짐했다.

 

한편, 정계규 목사는 금번 제105회기 합동측 회록서기로 선출되어 교단 발전에도 총력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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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요한 군> 

다음은 소강석 목사의 SNS 전문이다.

 

저는 927일 주일저녁 잠시 미루어두었던 한 가지 약속을 지켰습니다. 우리교단의 회록서기이시고 경남 사천교회를 담임하시는 정계규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요한기념사업회에 선교후원금 5천만원을 전달한 것입니다. 정계규 목사님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정요한 군을 선교지에서 잃은 아픔을 안고 계신 분입니다.

 

정요한 군은 20091227일에 선교활동을 위해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밀림 원주민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스포츠과학부에 다닐 정도로 건강한 신체능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신앙으로 자라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실천했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선교활동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날, 갑자기 파도에 휩쓸린 3명의 여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변의 어느 누구도 뛰어들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을 때, 요한군은 그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바다에 몸을 던진 것입니다. 사력을 다해 3명의 생명을 구했지만 자신은 탈진하여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고 정요한 군은 단기선교를 떠나기 전에 마치 생의 마지막을 미리 알고 정리한 사람처럼, 통장을 확인해 보니까 잔액이 5209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단기선교를 떠나기 전에 정 목사님께서 필요한 경비를 주었는데, 어려운 친구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통장에는 5209원만 남겨두었더라는 것입니다.

 

학교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요한군은 주일이 돌아오면 교회에 헌금할 돈을 미리서 다리미로 깨끗이 다림질을 했다는 것입니다. 은행에 가서 깨끗한 돈으로 바꿀 시간이 없으니까, 하나님께 드릴 돈을 깨끗이 다려서 냈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요한군은 25년의 짧은 생을 선교지에서 마쳤습니다. 요한군의 시신이 화물기에 실려서 고국에 돌아왔을 때, 인천공항에는 100년만의 폭설이 내렸습니다. 정목사님께서는 아들의 장례식 때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아홉 가지 감사기도를 본받아, 거기에 한 가지 제목을 더하여 10가지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그 기도제목을 듣고 눈물을 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로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타국에서 잃었으니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고 아팠겠습니까? 그러나 정목사님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정계규목사님은 아들의 아름다운 선교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0107월에 요한기념사업회를 조직하여 선교사역을 이어가셨습니다. 특별히 정목사님은 아들 요한 군이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밀림지역에 아들의 이름으로 네 개의 교회를 건축하셨습니다.

 

저는 고 정요한 군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아버지인 정계규 목사님께 교회 건축을 위한 선교비를 후원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사실을 알았을 당시는 총회 선거 기간이었기 때문에 선거법 때문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총회가 끝난 후 바로 첫 주일저녁에 정계규 목사님을 초청하여 간증집회를 한 후 5000만원의 선교후원금을 전달하게 된 것입니다. 정목사님은 아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밀림지역에서 선교사로서 헌신하며 마지막 여생을 보내는 꿈을 꾸고 계십니다.

 

저는 정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 어쩌면 저토록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단 말인가. 얼마나 위대한 믿음이기에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아들이 못 다 이룬 선교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단 말인가.” 저는 합동 교단 총회장으로서 첫 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저는 정목사님의 신앙을 본받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한국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사명의 초심을 잃지 않고 걸어가리라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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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 “고 정요한 군의 위대한 선교는 지금도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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