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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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는 2개의 창조론이 존재한다. 창세기 1: 27절에 모든 만물을 창조 한신 후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 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 하시고 라고 말씀 하신다. 또 하나의 창조에 관한 말씀은 창세기 2: 20-25절의 말씀에 있다.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그가 잠들매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이것을 남자에게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 말씀 하신다.

 

대개의 경우 전통신학은 창세기 1장의 것보다는 창세기 2장을 다루어 왔다. 거의 모든 주류 신학이 그랬다. 즉 가부장적 중심의 삶을 살아 온 사회와 역사가 남성 중심의 삶을 강조하는 문화를 살다 보니 가부장적 남성 중심의 신학을 전개 하는 방식으로 창세기 2장을 거의 모든 신학의 중심 뼈대로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이 차별에 저항 하고 약자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성적 차별과 문화적 차별을 당해 왔다는 자각을 하면서 이러한 가부장적, 남성 중심의 신학은 도전을 받게 되고 젠더 문제와 약자들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는 혁명적 도전을 받기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흐르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여성신학이나 해방의 논리가 아니라 인간 모두의 인권을 주장 하고 특히 약자와 가진 것이 없이 성을 착취당해 온 억압으로부터 인권과 인간 해방 운동으로 자연이 방향을 지향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의 여성들에 대한 삼정도와 칠거지악 같은 것을 보면 여성들이 얼마나 남성들의 차별과 사회적 역사적 착취와 억압을 당해 왔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성소수자의 인권 뿐 아니라 모든 여성들의 인권과 해방을 외치는 운동으로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 중 중심적 이슈가 성희롱과, 성추행, 성폭력은 사회적 공감을 얻어서 가해자라고 지목 되면 무조건 피해자 중심으로 몰아가는 강력한 처벌과 심판으로 몰아간다. 3선의 서울 시장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서울 시장이 바뀌고 정부 여당은 큰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필자는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의 문화와 사고, 행동들은 분명히 반성과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피해자의 인권이 철저히 보장 되고 그 아픔이 치유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피해자 중심의 일방적 주장을 통하여 가해자로 지목된 인권이 말살되고 한 순간에 허물어지는 일은 절대 반대한다. 피해자의 인권은 물론이고 가해자라고 일방적으로 몰아 부치는 인권과 삶도 존귀하다. 피해자 중심의 진술만 듣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삶이 무너지고 극한 상황으로 간다면 너무도 억울할 것이다. 적어도 쌍방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보고 인지해서 공정한 판단이 내려져야할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 중심이라고는 하지만 상식도 없는 가사를 쓰는 소위 언론들도 정직하고 사살을 확실히 한 후 공정한 기사를 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만일 피해자 중심이라는 전제로 가해자로 지목된 삶이 억울하게 무너진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미투 운동이 제 대로 자리 잡으려면 이러한 모순 된 말과 몰아기기 식의 인권에 대한 폭력적 운동. 일방적 협박과 공격 등 모순 된 미투 운동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매우 긴 가부장적, 남성 중심만의 역사는 바꿔져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미투 운동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되도록 몰아가기 식의 미투 운동은 반대한다. 지금은 모든 것이 전통적 가치와 문화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의 혁명적 문화가 태풍과 광풍처럼 몰아치고 있다. 특히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가 발부치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특히 대한민국의 문화적 하나의 기질은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불 일어나듯 하다, 일제의 미 청산과 미군 주둔의 신식민지를 75년 살고 있는 한과 억울함을 어떻게 풀 수 있겠는가? 완전한 속국으로 살고 있다. 말이 우방이고 동맹이지 미 제국주의의 사슬에 얽매여 이 틀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 적어도 남과 북이 영구 평화협정을 맺고 자유로운 왕래와 교류를 하는 날이라도 왔으면 한다. 세대 간의 가치관과 급격하게 변화 하는 문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세상과 문화는 변하게 되어 있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아야 한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가 일방적으로 심판을 받는 비상식적 운동과 문화는 그 자체가 저항을 받게 된다. 남녀가 평등한 양성 평등의 세계가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평등 공동체가 완성 되려면 그 누구도 억울함이 없는 진정한 인권과 인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의 문화는 견고하다. 미투가 진정으로 뿌리 내려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여성의 젠더의 차별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특히 약자들의 인간해방과 인간화 인권이 이루어져야 한다. 미투가 상식을 벗어나는 폭력적 미투가 아니라 모두가 끄덕일 수 있는 인권과 특히 피해자 중심으로 방향을 설정 하되 그 과정에서 억울한 사회적 인민재판식의 미투는 동의할 수 없고 깊은 공감을 얻기도 힘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 언론처럼 추악하고 더러운 존재가 없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인간과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고 철학도 없는 일방 통고식 보도는 절제 되어야 하고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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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홍성표 목사의 ‘가부장적 역사 반성과 미투 운동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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