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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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18:33).

 

18:15-35는 용서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형제를 용서했다고 하지만 그 형제를 보면 다시 그때의 일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렇다면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했을까요? 오늘은 중심으로 용서하는 법에 대하여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용서하면 우리는 자신이 용서해야 할 사람은 많지만,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나 형제들에게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나 타인에게 지은 죄들이 많다고 하십니다. 용서할 일보다, 용서받을 일들이 많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비유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에 대한 예입니다(18:21-35). 일만 달란트를 오늘날 환산하면 최소 10조가량 됩니다.

 

임금에게 10조 빚진 종이 빚을 독촉하는 임금에게 싹싹 빌었습니다. 그러자 임금이 모두 탕감해주었습니다. 그 종에게도 천만 원 빚진 자가 있었습니다. 10조에 비하면 천만 원은 지극히 적은 액수입니다. 그런데 그 종은 자신에게 천만 원 빚진 동관을 탕감하기는커녕, 다 갚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하고 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노하며 그 악한 종에게 이전 탕감해주었던 것을 모두 갚도록 하였습니다. 악한 종은 오늘날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소탐대실이라고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 못 한다면, 이미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탕감받은 우리의 죄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제가 이십 대 때의 일입니다.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 가끔 인사하는 정도의 형제에게 살 좀 빼시죠.”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는 버럭 화를 내면서 비싼 밥 먹고 찐 살인데 당신이 뭔데 빼라 마라 해?” 저는 그런 말이 그렇게 실례되는 말인 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이런 말은 제 사촌 누이에게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형제가 버럭 화내는 것을 보고 비로소 제가 동생에게도 실수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위의 사례는 단지 드러난 일일 뿐입니다. 그 형제처럼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제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제 말이나 무례함으로 인하여 속으로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흔히 아직도 장가(시집) 안 갔어? 총각(처녀)으로 늙을 거야?” 등도 실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하는 말이지만 예민한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지나친 관심이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허물 많은 우리가 용서할 일보다 용서받을 일들이 훨씬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주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는 심정으로 형제를 너그럽게 대하여 줄 것입니다. 주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5:7)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긍휼을 조금만 심었는데, 거두는 열매는 100배 많습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용서를 심어서 용서를 거두어야 합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백번 천번 잘 대해주다가도 한번 잘 못 하면 토라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섭섭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섭섭한 면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과거에 우리에게 한 친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현재 섭섭한 일들에 대한 상처를 지울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탕감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형제에게 무례가 많이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과, 형제로부터 받은 은혜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 등이 진심으로 형제를 용서할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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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진심으로 용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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