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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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안건을 설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순종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기브온 사람들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이 부분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과서적인 예이다.


기브온 사람들은 도착해서 먼저 선수를 친다. 여호수아와 일반 백성들에게 자신들이 매우 먼 곳에서 왔다고 주장하면서, 이스라엘과 조약 맺기를 구한 것이다. 신명기 7:2은 이스라엘이 그 땅 거민 중 누구와도 언약을 맺지 말라고 명백히 금한다.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의 접근법은 이스라엘이 언약을 맺을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브온 사람들에게 왜 자신들과 언약을 맺어야 하는지 묻는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기브온 사람들은 더 비굴한 자세를 취해 여호수아에게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종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대등한 만남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주도권을 쥐는 언약을 맺으려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더 면밀히 질문한다. 그들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묻는다. 하지만 기브온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대답하면서 그들 자신에 대해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려 하면서 다만 그들이 이스라엘의 종이라는 주장만을 거듭한다. 그들이 심히 먼 나라에서 왔고 여호와의 명성 때문에 왔다고만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라합처럼 여호와가 출애굽과 시혼과 옥에게 하신 일을 들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여리고와 아이성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단지 이스라엘이 그 땅에 들어오기 전의 사건들만 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장로들과 주민들이 그들에게 양식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의 종으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라고 했다고 주장한다. 그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양식과 여장을 증거로 제시한다. 그러면서 너무 오랫동안 여행을 하여 모든 것이 다 썩고 해어졌다고 강조한다.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은 그들의 영적 실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기브온 사람들이 가져온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 여호와께 묻지 않는다.

 

모든 결정에는 결과가 따른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정죄를 받고 있는 백성과 언약을 맺음으로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낸 것처럼 보인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는 것은 언약을 맺은 지 얼마 안 되어 기브온 사람들이 사실은 그 땅에 살고 있는 백성임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성읍으로 출발한다. 알고 보니 그곳은 기브온,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아이 라는 네 성읍으로 서로 몇km 거리 안에 있는 성읍들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성읍들을 공격하는 대신 자기 족장들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했던 맹세로 인해 그 사람들을 살려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족장들은 자신들이 현 상황을 유발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또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에 위배 되는 행동을 하면 진노가 임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들이 한 맹세를 어김으로써 이전에 저지른 실수를 더 악화시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견해를 취한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기브온 사람들에게 그 언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한다. 그것은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는 것이다(21).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한 맹세를 어길 수는 없으므로, 기브온 사람들이 생명을 부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거짓말로 언약을 맺은 것에 비추어, 이전에 살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계속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결정이다.


이스라엘이 상황을 바로 잡으려면 여호와가 인정하실 방법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은 여기에서 신명기의 두 본문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것이다.

 

첫 번째 본문인 신명기 20:10-11은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잡힌 그 땅 밖의 사람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는 것을 허용한다. 이것이 분명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라는 말의 의도이다. 그러나 이 문구는 또한 두 번째 본문인 신명기 29:11에서 이스라엘 안에 거하면서 이 역할을 하는 외국인들을 묘사하는 말로 나온다. 그래서 그들로 인해 생겨 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님이 이미 계시하신 내용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처음에 문제는 여호와를 찾지 않음으로 인해 생겨났다. 그래서 해결책의 핵심은 여호와를 찾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일은 선교지에서 너무도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물론 우리는 사람들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긍휼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많은 경우 올무가 됨을 선교지에서 많이 보게 된다. 항상 하나님께 묻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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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웅 교수의 선교칼럼] 여호수아와 선교21-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수9: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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