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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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21:2).

 

나귀 어미와 나귀 새끼가 한 풀밭에 매여 있습니다. 본문 내용만으로는 나귀 새끼도 매여 있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나귀 새끼만 매여 있다고 나옵니다. 그러므로 나귀 어미와 나귀 새끼가 모두 매여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어린 시절 염소나 소를 끌고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는데 언덕이나 나무나 다른 짐승이 닿지 않는 곳에 매여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만일 그들을 매고 있는 줄이 서로의 반경 안에 들어 있다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습니다. 줄끼리 얽히고설켜 그들의 목을 조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있는 나귀도 예외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서로 마주보고 곧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겠지만 몸이 닿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어미가 새끼를 향하여 다가오고 새끼가 어미젖을 먹기 위하여 접근하였을지라도 서로 바라만 볼 뿐 접촉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러한 나귀 어미와 새끼를 풀어 주님께로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매인 그들이 풀어졌을 때 드디어 그들은 피부를 접촉하며 그동안 못다 하였던 사랑을 나누며 예수님께로 왔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6:12-14).

 

신앙인들이 사욕을 좇아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자유가 아닙니다. 죄가 왕 노릇하는 것이며, 죄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귀와 나귀 새끼처럼 매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풀밭에 매여 있었지만, 우리는 사욕, 곧 죄에 매여 있었습니다. 사욕이라는 우상이 끄는 그대로 끌려 간 것입니다(고전12:2). 그런데 주님께서 나귀를 풀어주었듯이 신앙인들이 다시는 죄에 매여 있지 않도록 줄을 끊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더 흉악한 주인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더러운 귀신이 나가 물 없는 곳으로 다니다가 마땅히 쉴 곳을 찾지 못하여 이전 살았던 집으로 와서 보니 그 집이 소제 되고 수리되었던 것을 보고 전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려와서 살기 때문에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여진 것과 같습니다(12:43-45).

 

우리도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해서 방심한다면 전보다 더 악한 귀신이 들어오게 됩니다.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보다 더 인색하고 더 이기적이고 더 명예영광 추구하고 더 양심 안 쓰고 더 욕심부리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거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마귀는 거듭난 신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 이상 받지 못하도록 얼마나 노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노리는 마귀를 사전에 차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신앙인들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6:13, 12:1). 나귀 새끼처럼 자신의 몸을 예수님이 쓰실 수 있도록 드려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이 우리를 보혈로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고전6:19). 우리 임의대로 쓸 권리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영광만 위해야 합니다.

 

나귀 새끼를 주님이 쓰시지 않았다면 그 나귀 새끼는 영혼 없이 죽는 한 마리의 나귀 새끼에 불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그를 만나주셨을 때 그는 주님의 나귀가 되었습니다. 주님 때문에 사람들이 그 잔등에 인간의 옷을 걸쳐주고, 그가 걷는 곳에 사람들의 옷을 펼쳐 두었으며, 승리의 나뭇가지 위에 걸으며, 존귀한 나귀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영광에 나귀도 참예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존귀하게 되려고 아니해도 주님 한 분 영화스럽게 하려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면 이처럼 주님께서 곧 영광을 주십니다. 죄에 매여 죽을 인생을 주님께서 풀어주셨으니 우리 역시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자신을 주님께서 쓰시는 도구가 되도록 주님께 드리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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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독연 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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