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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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기둥을 전의 낭실 앞에 세우되 우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좌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왕상7:21).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때 전의 낭실 앞에 세운 두 기둥의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우편 기둥의 이름을 야긴이라고 하고, 좌편 기둥의 이름을 보아스라고 하였습니다. 야긴은 히브리어로 저가 세우리라.’ ‘저가 확립하심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한 야긴은 다윗시대 족장이며 제사장이었던 인물로도 나옵니다(대상9:10, 24:17). 반면 보아스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인명으로는 룻의 남편이며 다윗의 증조부입니다. 성전의 두 기둥이 가지는 특징적인 명칭은 야긴과 보아스라는 인물보다 거기에 담긴 의미에 있습니다.

 

야긴의 의미를 담고 있는 저가 세우리라에서 세우는 것의 주체는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무슨 일을 해 놓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아니하고 스스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 다음에 반드시 실수하게 된다는 것을 요사이 톡톡히 교훈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피조물입니다. 그러니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세우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127:1). 성전을 짓는 것도, 나라를 세우는 것도, 가정을 세우는 것도 하나님이 세워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허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누구를 세워주실까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삼하7:27).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세워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 집안에 왕이 끊이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솔로몬의 타락으로 그의 사후 르호보암왕 때 이스라엘은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열되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시조 여로보암부터 마지막 호세아 왕까지 208년이라는 기간에 왕이 19명이 교체 되었으며 왕조(가문)8번이 바뀌었습니다. 반면 다윗 왕조는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에 끌려갈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왕하25:7). 그리고 그 약속은 신약 시대 이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하였기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토록 복을 주셨을까요? 다윗은 단지 하나님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시고 다윗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나단에게 이런 말을 했을 뿐입니다.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삼하7:1). 자신은 좋은 백향목 궁에 거하는데 그를 왕이 되게 하신 하나님은 장막 가운데 있는 것이 하나님께 죄송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을 건축하고 싶은 마음을 썼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영영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삼하7:11-13). 야긴은 이와 같이 하나님이 세우시리라는 약속의 터며, 기둥입니다.

 

기둥 중에 하나인 보아스는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하려하면 큰 낭패를 당합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줄 때는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때였습니다(21:5). 아브라함과 열 살 아래인 사라의 나이는 90세였습니다. 이미 오십 세만 되어도 경수가 끊어지는 시기인데 90세라니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죽은 자와 방불한 사람을 통하여 한 민족을 세우는 일을 하였습니다(11:12). 오직 능력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알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은 이스라엘에 흉년이 들자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갔습니다(1:2). 그곳에서 모압 여인에게 두 아들을 장가보냈지만 엘리멜렉과 두 아들은 모두 죽고 세 과부만 남았습니다. 10년쯤 지난 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아보셨다는 소식을 듣고 둘째 자부 오르바는 모압에 남았지만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그 시대에 힘 있고 능력 있는 남자는 모두 죽은 상태였기 때문에 나오미와 룻은 그야말로 약한 상태였습니다. 하루는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보아스에게 속한 밭이었습니다(2:3).

 

보아스는 그 때까지 혼인을 하지 않은 노총각이었습니다. 거기서 보아스는 룻과 혼인하였습니다. 그래서 태어난 사람이 다윗의 조부 오벳이었습니다(4:17). 나오미와 룻은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가 되어 다른 사람의 밭에서 주운 이삭으로 연명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모두를 잃어버리고 아무 것도 의뢰할 것이 없을 때 보아스라는 유력자를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자 무능한 자에게 임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스스로 지혜로운 자로 여기면 하나님께서 결코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성전의 두 기둥인 야긴과 보아스는 성전을 세우실 분도 하나님이시고, 세울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임을 알고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하나님께 힘을 받아서 살아가야 함을 지금 우리에게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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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독연 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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