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이선규 목사-<금천교회>

요즘 강남의 모교회가 교회를 새로 신축하는 문제로 한구교회 내에 여러 설들이 난무하다. 이에 대해 “교회의 내부적인 사항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반 밖에서 보는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방어도 만만치 않다.
한국교회는 짧은 기간 동안에 이렇게 세인의 관심을 사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에는 분명하고도 틀림없다. 교회당의 대형화 교회재정의 풍요함 등은 옆에서 보아도 실감이 날 정도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외형상 발전이 과연 교회가 지녀할 자세를 지니고 있느냐 일 것이다. 과연 그리스도의 뜻하시고 목적 하시는 교회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 중에 요한계시록 2:1에 있는 에베소 교회에 대한 말씀이 떠오른다.
이 교회는 교회로서의 자세는 훌륭한 면이 있었다. 그것은 현대 교회가 배워할 조건들이 분명하게 보여 진다. 그러나 성서는 한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한국 교회는 한 가지 평범하면서도 잊어서는 안 될 보화를 잊어버리고 잊지는 않은가? 오늘 날의 한국 교회는 잘못하면 오만 무례한 집단이라는 지칭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금할 수 없다.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명하신다.(마11:29)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는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자기를 낯 추시고 죽기까지 복종 하셨으니’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생각해 볼 때 이와 같은 정신은 교회의 모든 기구나, 제도나 직분자들에게 다 같이 적용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어야 할 것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어떤 교직자들 중에는 자기가 서있는 설교자의 이 자리는 말씀을 듣는 청중과는 완전 구분된 특수한 부류인 듯 오만하고 자존지대 하여 자기야말로 수제자 베드로의 직계후손이요 하나님의 대변자로 상식과 예의를 저버린 오만 무례한 사례를 보는 것이 적지 아니한 것이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작금의 현실이다. 또한 무슨 특별집회를 한다고 자처하는 분들 중에는 신문지상에 대서특필 광고를 내면서도 교만한자리에 빠지는 유례를 적지 아니 볼 수 있다.
우리 한국교회는 선교 2세기를 한참 들어서고 있는 이 시점에 고요히 그리스도의교회, 그리스인으로서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심각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가난한자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신약에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러 왔다고 하는 세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물어 보았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예수께 와서 오실이가 당신이 보낸바 된 그분 이십니까? 라고 여쭈어 보았을 때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고하라’ 라고 말씀 하시며 이러한 모든 현상을 알리어라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일러라 하셨다.
작금의 한국 교회는 한국교회는 대형화 하였고 누가 보든지 자랑할 만하지만 그곳에는 가난 한자가 않을 자리 가 없지 아니 한가? 요즘 거리에 나가보면 거대하고 화려한 교회당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높이 솟은 십자가 탑은 널부러져 있다.
나는 교회당이 불필요 하다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성가대 장엄한 강대상을 탓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러한 환경에서 빠지기 쉬운 것은 자기도취에 빠져서 새로운 귀족 계급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복음이 필요한 약자와 병자와 가난한 형제들의 더 많은 수요가 우리들의 주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가난한 형제와 자매들이 아무런 부담 없이 예배드릴 수 있는 교회 공의성이 확립되어 희망을 주는 한국교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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