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이선규목사
2012/04/19 17:0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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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에 나봇이라는 이스라엘 사람이 포도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원은 사 마리아를 다스리고 있는 아합의 별궁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아합왕이 나봇을 만나 말하였다. “그대의 포도원은 내 별궁 근처에 있으니 나에게 양도하게 그것을 정원으로 만들고 싶네. 그대에게는 더 좋은 포도원을 마련해주지” 나봇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거절을 당한 아합왕은 침울한 심정이 되어 별궁으로 돌아가 자리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음식을 들려고 하지 않자 그 아내 이세벨에 의해 나봇을 처리하고 포도원을 빼앗았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 이야기의 중심은 그 엄청난 불균형이다. 힘없는 농사군 나봇과 한나라에서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는 아합왕 사이에서 일어났다. 또 나봇에게는 문제의 그 포도원이 온 가족의 생명이 걸려있는 땅일 뿐 아니라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유산이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유산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모세의 법에 따르면 이스라엘 자손의 유산은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못한다(민36:7)고 되어있고 피할 수 없는 사정으로 그 땅에서 떠났을 경우에도 5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희년에는 다시 자기의 본래 소유지로 돌아 가야한다(레 25:13)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자가 약자의 영역을 침범해서야!


구약성서에 나봇이라는 이스라엘 사람이 포도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원은 사 마리아를 다스리고 있는 아합의 별궁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아합왕이 나봇을 만나 말하였다. “그대의 포도원은 내 별궁 근처에 있으니 나에게 양도하게 그것을 정원으로 만들고 싶네. 그대에게는 더 좋은 포도원을 마련해주지”
나봇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거절을 당한 아합왕은 침울한 심정이 되어 별궁으로 돌아가 자리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음식을 들려고 하지 않자 그 아내 이세벨에 의해 나봇을 처리하고 포도원을 빼앗았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 이야기의 중심은 그 엄청난 불균형이다. 힘없는 농사군 나봇과 한나라에서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는 아합왕 사이에서 일어났다. 또 나봇에게는 문제의 그 포도원이 온 가족의 생명이 걸려있는 땅일 뿐 아니라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유산이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유산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모세의 법에 따르면 이스라엘 자손의 유산은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못한다(민36:7)고 되어있고 피할 수 없는 사정으로 그 땅에서 떠났을 경우에도 5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희년에는 다시 자기의 본래 소유지로 돌아 가야한다(레 25:13)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봇으로서는 그 포도밭을 잃는다는 것은 본인과 가족의 위신이라고 하는 사회 적 생명과 함께 하나님께 대해서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움으로써 신앙인으로서의 생명까지도 같이 잃는 것이 된다. 그런데 그걸 탐내는 아합으로서는 그 땅이 자기 집의 정원을 좀 늘릴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힘이 강하고 사나운 짐승이 힘이 약한 짐  승을 잡아먹고 사는 금수의 세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바다 속 어족도 그렇고 곤충의 세계도 그렇다. 만일 인간 세계에서도 힘이 센 자가 힘이 약한 자를 마음대로 치고받고 유린하고 멸시하고 죽이고 하면 그 얼마나 처참하고 흉악한 세상이 될까?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 세계에도 항상 강자가 약자를 압박하고 멸시하고 착취하고 패망케 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실로 세상은 강자의 것인 양 강자의 주권 밑에 예속되고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국제 관계를 보면 항상 강대국은 약소국을 여러 모양으로 억압하고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상엔 언제나 어른이 있고 어린 아이가 있으며 자본주의에는 기업주가 있고 고용인이 있고  지식의 강자와 약한 자가 모두 한데 섞여서 산다. 그러니까 강한 자와 약자는 서로 지켜야 할 윤리가 있어야 한다. 강한 자가 자기 힘과 실력을 믿고 과시하며 지배욕을 가질 때 위의 아합왕 가문의 추잡함이 드러나고 만다. 부모가 약한 어린자녀를 보호하며 도와주어야 하듯이 지식이나 체력, 과학이나 그 어떤 강 한 힘을 가진 자는 모두 약자를 돌보아 주고 사랑해 주고 협동해주는 책임과 즐거움을 나눌줄 아는 행동이 강자의 윤리가 아니겠는가? 어떤 약자들은 공연히 강한 편을 시기 하고 반항하며 적대시, 또는 그 강자에게 맹종하거나 아첨하며 비위나 맞추어 가면서 호구지책이나 해결되면 감지덕지로 알고 있는 것도 약자다운 자세가 아니다.
요즘 약자를 돌보아야 할 어느 기관에서 장애인을 감금해 놓고 학대한 사건이나 대기업들이 문어발식으로 돈이 되는 일이면 슈퍼마켓이고 베이커리 빵집이건 파고들어 영세업자들의  원성이 높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오늘 아침 일간지의 일본의 살아 있는 경영의 신 이나모리교세라 명예 회장의 인터뷰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자본주의는 욕망을 원동력으로 발전 했지만 거기엔 절제가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이든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이어선 곤란 하다” 말에 고개를 숙여 진다. 이익을 추구 하되 올바른 일을 한다는 도덕 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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