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목사가 무속인을 찾은 까닭은?

이선규목사

지난 주 몇 분의 목회자들과 전도대를 결성해 각 교회를 순회하며 전도를 시작했는데, 모임을 주관하는 한 목사님이 교회 지역 상황과 전도활동에 대해 소개하며 자신이 겪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 목사님 교회 주변에는 유난히 무속인이 많다는 것이다.
한번은 마음을 다져먹고 무속인의 집을 찾아 갔는데 단번에 하는 말이 “우리 집에는 목사가 더러 다녀간다”며 목회자들도 자기 말을 잘 듣는다며 자신만만 하더란다. 대체 왜 점집을 찾아왔는가 물어보니 개척교회를 시작하고자 하는데 성공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을 물어보기 위해서란다.
첨단의 과학을 자랑하고 세계 선교의 2인자임을 자랑하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비록 소수겠지 하면서도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석가는 모든 탐욕을 버리라고 했지만 절에 찾아가는 사람들은 그 탐욕을 성취시켜 달라고 불공을 드린다.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모두다 복을 달라고 한다. 성경에 복을 약속하고 있다고 합리화 한다. 산상수훈을 생각하여 보라 그것이 오늘날 성도들이 구하는 복인가?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셨는데 성도들은 성공의 문 부자가 되는 길을 두드리거나 찾는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구하라 주시리라’고 맞장구를 놓는다.
이것이 무당들의 행위와 다른점을 찾으라면 무엇이라 할까?
헌금 봉투가 커지면 축복기도가 길어지고 음식상이 기름지면 신명기의 축복문이 터져 나온다. 전도행사를 마치고 식사를 나누면서 대화 중에 한 분이 자기 교회에서 지난주 권사 취 임행사가 있었는데 본인을 위해서는 돈을 물 쓰듯 하면서 권사직을 취임하면서는 너무 인색하게 했다는 말에 다른 목회자가 적어도 000 정도는 해야지 하며 부축이는 말에 중세의 암흑시대를 배회하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는데 거액의 로비가 있었다는 일로 정계가 시끄러운데 이들은 너무나 당연시하는 듯하여 아쉬움을 남기고 자리를 피했다. 돌아오면서 오늘 아침 나의 기도를 점검해 본다. 기도의 주 내용이 재수 없는 일과 우환이 없기를 비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떤 삶을 살았던지 우선 축복만 해 주길 원한다. 하나님이 세상적인 일들을 형통케 주면 찬송과 감사가 넘쳐 나온다. 그러나 한 주간 동안에 재수 없는 일이라도 생기면 그 때는 하나님에 대해서 감정이 좋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인가? 환란 중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 사는 자들이어야 한다. 기도할 때도 마치 주문 외듯이 하지 않는가? 말을 많이 해야 신령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집을 지을 때 불신자가 돼지 머리를 놓고 제사 드릴 때 신자들이 예배로 그것을 대신 한다는 식이라면 무슨 신앙의 의미가 있겠는가? 똑같은 기복신앙에 방법만 다른 것은 아닐까?
성서에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셨다. 비록 소수이겠지만 그렇게 해서 좋은 장소를 구하고 교회를 개척하면 무속인의 말대로 행운을 잡은 것 아닐까?
그렇게 교회를 키우는 것이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성공일까? 결국 그것도 불에 타버릴 것이 아닌가. 얼마나 하나님을 무시했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
오늘 아침 신문에도 축복을 내걸 부흥회 광고가 몇 개나 눈에 뜨인다. 나도 축복기도 한번 뜨겁게 받아 성공하는 목회자 되면 그만 아닌가? 분별력이 요구된다.
많은 이가 새로 나온 것이라 하면 거기에 사로 잡혀 끝없이 새로운 것만 추구한다. 진리와 모조품을 구별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어떤 이들은 옛 가르침에만 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 그러나 주님께서도 좋은 교훈에도 오류에 불과 할 수 있으니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고’ 하셨다. 채와 키를 써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진리로 그 열매를 식별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 따라 나의 목회 여정에 좋은 열매만 맺히기를 소원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거나 그럴듯하고 열매를 보일 듯 하면 무조건 받아 들이고 따라가는 경향은 없는가? 주님은 이세벨의 교훈을 듣지도 말고 따라가지 말라고 분부 하신다.
그들은 영적인 돌팔이 의사들이 뻔뻔하게도 진짜라고 장담하는 악을 행하고 그냥 집어 삼키고 있다. 지혜에는 그런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고전 14:20절) 무엇이든 받아들이기 전에 신중하게 시험하라고 하셨다. 성령께는 분별의 영을 달라고 기도드렸다. 주여 주님의 양떼를 해로운 초장에서 멀리 벗어나 푸른 초장으로 이끌 수 있도록 지혜를 주옵소서 오늘 새벽에 어제의 일을 기억하고 기도 했다.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목사가 무속인을 찾은 까닭은? - 이선규목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