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시간과 공간 안에 사는 삶


한 해의 시작에서 생각해 보는 것은 인간이 산다는 것, 그 자체가 공간과 시간과의 관계를 전제로 하며 산다는 것을 알게 한다. 결국 산다는 것은 삶에 공간의 지배하에 있어야 하기에 결과가 있어 시간에 따라 태어 날 때와 죽을 때가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이 살아가는 삶에서 마음으로 시간과 공간을 일구며 산다는 것을 알게 한다.
중국 명대(明代) 홍응명이 통속적인 처세 철학서 ‘채근담’에서 그는 “시간은 생각에 달려 있고 공간은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한 말은 삶을 잘 말 해준다. 그리하여 우리 신앙인들은 신과 우주 만물을 이분법적인 대립관계로 보지 않고 통전적이며 유기체적인 생명관계로 이해한 화이트헤드(A. N. Whitehead,1861-1947)의 “과정철학”사상을 신학에 적용하여 인간이 산다는 것도 그 자체가 공간과 시간과의 관계를 전제로 하여 살아가는 것을 제시한다. 예컨대 이는 인간과 공간의 삶의 관계가 내면적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행동하기 위해서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고 인간이 공간을 조정함과 동시에 행동하는 것으로 공간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간은 인간의 생활 속에서 사실과 의미를 갖게 되고 사물에 있어서는 사실공간, 자연공간, 인간적 공간으로 그 의미 있는 공간이 된다. 무엇보다도 공간에 있어 인간은 신체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마음에 의해 살아가는 것임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서로의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가는 일상의 우리의 모습에서 보면 전화를 할 때 첫 번째 대화는 ‘지금, 어디야?’한다. 이것은 상대방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부터 확인하는 것에서 이를 안다. 그 곳을 확인하는 것은 그 공간을 앎으로 그 사람이 현재 어떤 삶의 형편인지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원점을 태초에 시작하심으로 세계의 차원과 우주의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 공간 안에 가능한 모든 차원의 세계를 초월하신 분 창조자 하나님을 알게 한다. 지금에 와서는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창조 우주세계를 하나님의 몸의 일부로 보게 하는 통찰력으로 그 신앙을 갖게 한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공유하는 우주 공동체 의식을 제공하는 신앙임과 동시에 하나님과 만물과의 신비한 관계를 깨닫게 하는 영성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제는 “시간과 공간속에 사는 삶”으로서 우리는 우주와 만물을 단순히 물질의 세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몸의 일부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보살펴서 함께 살아가는 우주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삶’의 가치를 구원하는 삶으로 살아야 함을 알게 한다. 이를 하나님의 시간에 붙들린 삶이라 한다.
하나님은 우주 그 중에서도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신 피조물에 밀접하게 간여(干與) 하심을 알게 한다. 우주전체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지음 받은 피조물임도 알게 한다. 인간은 모두 “시간과 공간속에서 살아가는 삶”으로 하나님에게 붙들린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원의 시간 안에 잠입해 있는 시간과 영원의 역사에서 산다. 그 삶은 종말을 보고 산다. 심판이라는 것은 영원의 개념이다. 영원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으로 시간 안에 영원이 들어 왔으며 우리는 시간과 영원을 공존하는 삶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일반인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삶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삶에 두 방향을 제시한다. 크로노스적 수평과 카이로스적 수직을 가르쳤다. 그 어느 것이 우선이 될 수 없지만 구체적으로 수평적인 것을 가르치며 사셨다. 그러나 수직이 없이는 수평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음을 알게 한다. 이유는 수직과 수평을 이루는 것은 십자가이다.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한지를 알게 한다. 수평과 수직이 이루는 십자가 이것이 구속의 역사인 것이다. 그리하여 삶은 시간과 공간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삶은 때를 알게 한다. 세상사 모든 것은 때를 따라 산다. 삶은 때를 찾는다. 마냥 시간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시간에 대해 시간이 없다’고 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인생을 위해 놀라운 부르심의 소명을 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에서 때를 따라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시간에 오셨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시간은 매우 소중하고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이 시간은 매 순간이 심판으로 온다. 이를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시간에 붙들린 사람’으로 “바로 지금은”하고 전제하며 이르는 말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바로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함에 주목한다. 1년 365일의 매일의 삶을 "바로 지금은"하고 365일의 오늘의 삶을 종말적으로 바로 '지금'으로 곧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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