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나눌수록 커지는 은총!


지난주 서울에서도 부자들이 많이 산다고 하는 송파에서 세 모녀가 만화가의 꿈을 꾸며 열심이 살아 보려고 몸부림 쳤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쳐 꿈을 접고 생을 마감 했다는 기사를 읽고 경제 선진국으로 진입 했다고 하는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나는가?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며 참회의 기도를 드려본다.
가진 자들이 조금만 이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기의 가진 것을 어차피 놓고가는것 내어놓고 나누었더라면 이런 안타까운 일은 벌어지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프란체스코의 일화가 떠올랐다.
어느 비바람이 심하게 부는 어느 날밤 남루한 옷차림의 거지가 성 프란체스카의 오두막으로 찾아 왔다.
“너무 배가 고프고 추우니 먹을 것과 잠자리를 좀 마련해 주세요”
프란체스코는 얼른 그 거지를 데리고 들어와서 불빛에 비춰보니 그는 얼굴과 코가 문드러진 문둥이다. 그는 음식을 준비해서 정성껏 대접한 뒤 자기의 잠자리를 거지에게 내어 주었다. 침대에 들어간 거지는 잠시 후 “추워서 견딜 수가 없으니 당신의 몸으로 나의 몸을 데워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의 요청대로 자기의 몸을 비벼 그의 몸을 데워 주었다. 새벽기도 시간이 되어 일어나 보니 침대에서 자던 거지는 사라지고 없는데 이상한 것은 피 고름이 흐르던 그 문둥이의 몸을 감싸고 잤는데도 자기의 몸에는 그 더러운 이물질이 묻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날 밤 하나님은 천사를 문둥이의 모습으로 그의 집에 보내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프란체스코는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함으로서 자기보다 크신 분과 하나되는 신비를 체험하는 은총을 얻은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흔히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면 내 소유가 줄어든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좁은 우리의 안목일 뿐이다.
풍요(affuence)란 말은 흐름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에너지는 멈추지 않고 항상 흐르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에너지의 순환을 멈추는 것은 피의 흐름을 멈추는 것과 같다.
피가 응고 되어 있으면 생명이 멈추게 되는 법 나눔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서에서 선행과 나눔은 거의 동의어로 쓰이는데 선행은 일반적인 의미 외에 특히 지혜 문학에서는 의로운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을 돕는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구약의 예언자 들은 형식적이고 물질적인 제사를 배격하고 선행과 나눔의 제사를 강조 하였다. 우리의 현실을 내다보자 종교 시설은 날로 늘어나고 믿는 사람도 많지만 우리 사회는 살기 좋은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가?
믿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가 이에 대한 답은 긍정적이지 못하다는데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신마을 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자기 쪽만 보고 살기 때문이다. 좀 더 크고 좀 더 넓은 곳을 향하여 마음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신앙인들은 이웃과 사회를 위해 좀 더 마음을 기울여 야 한다 왜 그럴까? 그들은 보통 사람보다 양심이나 도덕성이 요구되기 때 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희망이 있다. 교회도 많고 아직은 믿는 자도 많으므로 마음만 고쳐먹으면 무궁무진한 폭발력을 나는 믿는다. 이제라도 예수님의 가르침 ‘네 이웃을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교훈 하나만 바로 실천할 수 있을 때 한국 교회의 절망은 희망으로 떠오르게 되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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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눌수록 커지는 은총! - 이선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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