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십자가 지는 복음


예수님의 삶의 교훈은 언제나 주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의 역사를 전제로 한다. 즉, 그 예로써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 산상수훈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교훈은 언제나 제일 먼저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지를 가르친다. 그것은 “마음이 가난하여지는 것”이다.
이 과정을 지난 후에야 주의 교훈은 우리에게 실제적인 의미가 있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형편을 알게 하는 복음서에서 산상수훈은 인간이 지켜야 할 규범이나 율례가 아니라 성령께서 거듭난 주의 백성의 삶을 인도하실 때 나타나는 삶의 현상들에 대한 진술이다.
이는 롬:11;6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라”한다. 과연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거듭남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 하면 `위로부터 난다`는 뜻이다.
사람은 자기 뜻대로 자연적 생명을 전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영적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여기에 그 권한은 없다. 영적 생명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이 뜻하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으로 다시 나게 하실 때 비로소 사람은 영적 생명을 부여받는 것이다. 그래서 거듭난다는 것은 이미 부모를 통해 육적으로 태어난 사람이 다시 하나님을 통해 영적 생명을 부여받아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born of God)이니라”(요 1 : 13)이다. 이는 여기에 “십자가 지는 복음”을 알게 한다.
오늘날의 교회는 십자가를 믿음의 중심으로 두고 있지만 옛 고대 세계에서는 십자가를 지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당시 로마에서 십자가의 형벌은 이방인을 위해 고안해 낸 가장 끔찍한 형벌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이 극도로 고통을 느낄 때까지 죽음을 늦추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로마인들에게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십자가의 형벌을 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의 형벌을 당했다는 것은 그 분이 로마인들에게 멸시받는 이방인이었으며 그의 사역이 극악무도한 범죄로 비쳐졌다는 의미이다. 유대에서도 역시 범죄자를 나무에 달려 죽이는 관습이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여겨지는 죽음이었다.(신21:3)그리하여 당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결국 로마의 관점에서나 유대의 관점에서 모두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야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받아들여질 수가 없는 사건으로 취급이 되었다. 그래서 당시에 십자가를 통한 복음은 냉소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에서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고전 1:23)”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된 것은 단순히 우연한 일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애가 전적으로 십자자의 사역에 맞추어져 있었으며 사도들 역시 십자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순교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믿음으로 고백하기를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않기로 일부러 작정했다고 말하고 있음에 주목한다.(고전2:1-2) 과연 십자가가 어떤 의미가 있기에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그 십자가를 향하고 있는가? 십자가를 배척한 것은 고대인뿐만 아니다. 지금도 이슬람교는 중요한 선지자가 그렇게 십자가에서 끔찍하게 죽는다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십자가의 교리를 거부한다. 또한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스스로 연약함을 악으로 보고 십자가의 연약함 때문에 기독교를 거부였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자기희생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나타난 사건이다. 하나님의 속성에는 공의와 사랑이 있는데 그 두 속성은 서로 갈등을 일으키거나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 중에서는 둘 중 하나만을 만족시키는 일은 없다. 하나님은 항상 공의와 사랑이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의 일을 행하신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가장 잘 드러난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인간은 죄의 대가로 바로 스스로 치러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죄의 대가를 스스로 치룰 능력이 없다. 그 죄의 대가를 치룰 능력이 있으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으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대신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십자가 지는 복음 - 배성산목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