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영화 “명량”을 보며


1597년 임진왜란 6년, 오랜 전쟁으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던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전의(戰意)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 그리고 12척의 배 뿐.
반면에 일본의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자 조선은 더욱 술렁인다.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군선이 속속 집결하고 압도적인 수의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이순신 장군은 단 12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 바다를 향해 나서는데… 12척의 조선과 330척의 왜군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이 시작되는 눈앞의 현실에서 전투 하루 전날 이순신은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 휘호로서 마음에 결정을 표명한다.
그러나 한편 이순신은 조선 곳곳에 퍼져 있는 두려움으로 인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사람마저 나라와 민족을 포기해 버리는 모습에 책임을 통감하고 이순신이 타고 있는 대장선에의 그 고뇌는 그 현장이 쓸쓸하기 그지없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리게 된 이스라엘의 절박한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뒤로는 이집트의 군대가 맹렬한 기세로 추격해 오고, 앞으로는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내 디딜 수 없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어서 홍해를 배수진으로 치고 애굽 군대를 마주대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모세는 마음의 결단이 필요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다. 스스로의 마음에 따라 세상의 모습이 달라 보인다. 그러므로 마음을 이 세상 삶에서 잘 다스려야 함을 알게 한다. 똑같이 세상을 살면서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세상을 바로 보게 되면 그 삶은 옳은 판단으로 가는 것이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마음을 가지면 이 세상은 밝아질 것이다. 이는 두려움이 용기로 달라지는 이치를 안다.
한편으로 영화 “명량”을 보며 우리 역사를 생각하는 것은 한국의 근·현대 정치사의 기본적 성격은 조선왕조시대의 아시아적 전제정치가 준 가산관료제적 성격이 그 뒤 일본식민지통치에서의 군국주의적 식민체제를 거쳐서 해방의 시점에서는 일종의 ‘권위주의체제’의 성격으로 전락됨으로써 마침내 분단체제라는 민족적 비극을 조성하게 되었음도 알게 된다.
이로 인해 조선역사에서 한국 근·현대사에서 민족주의적 지도세력과 영향력의 한계를 찾아볼 수 있다. 민족주의 정치세력의 영향력 한계는 결국 분단 지향적 인사들의 강대국 추수노선에 의하여 민족주의세력을 억압하고 심지어 강대국의 종속적 상황까지 수용하는 일면도 보여주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민중 계층의 성장이 극도로 위축되었기 때문에 왕조체제하의 신민적 수동성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위로부터의 억압체제가 사회제도적 성격으로 고착되었기 때문에 일반 민중영역에서의 자발적인 성장이 그만큼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점에서 민중 부분의 자기세력강화에 의한 지배세력에 대한 도전은 결과적으로 지배세력으로 하여금 권위주의 체제적 성격을 가속화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곧 해방시기까지 한국의 정치사에서 실제적인 중요한 결정은 한국민족의 내재적인 민족·민중 역량의 결집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강대국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하여 자행될 수 있는 속성을 지속화시켰다는 점도 알게 한다.
사실로 예수그리스도는 서른세 살의 아주 짧은 나이에 삶을 마감했지만 그의 마음은 죽음으로 사는 영원한 삶의 구원의 길을 ‘밀알의 삶’으로 열어 보이신다. 이 삶의 비결을 성서는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밀알로 비유한다. 생명은 죽어야 그 자리에 생명을 얻는다. 한 알 그대로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 밀알의 비유 속에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과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는 생명과 사랑(희생)이 무엇인가를 비결로 가르쳐 주고 있다. 생명으로 사는 비결을 모르고 산다. 예수님은 이 말씀대로 친히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끝내고 인류 구속역사의 정점인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가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에 비유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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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을 보며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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