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하루가 천 년같이


그리스도교의 역사관은 창조적 사관으로 먼저 창조가 있고, 마지막에 종말이 있으며, 시작과 끝이 있어 알파와 오메가로 이를 알게 한다. 그리하여 사람이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흥할 때가 있으면 망할 때가 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루의 삶을 영원한 삶으로 사는 것이다.
성서는 여러 세대의 사건을 기록하고 그것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동시성과 현재성”으로 깨닫게 한다. 이렇게 우리는 흔히 이것을 역사라는 “과거의 기록”을 읽는 시각과 “미래”라는 사람이 알 수 없는 때의 일로 여겨왔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는 말은 이 땅에 서서 사는 세상 모든 인생은 반드시 주어진 오늘 “하루”밖에 살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만 주어진 인생에게 “영원”한 “하루”를 살라고 하신 말씀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말씀은 곧 우리들의 삶에서 생명이 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서의 말씀을 과거와 미래의 기록으로 만 성서를 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면 삶에서 생명이 되는 말씀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한다. 이는 종말적인 의식을 가지고 하늘의 약속을 믿고 이 약속을 삶에서 모험하며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하신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디 있는가? 그 곳은 주님의 사랑하는 자리에 있는 모든 이의 마음에 있다. 내 마음을 열어 주님의 사랑을 받고 그 이름으로 긍휼과 자비, 용서의 마음을 일구어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이 세상살이가 새 하늘이고 새 땅이 되어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인간은 시간 안에 갇혀 있기에 그 존재는 초월할 힘이나 시간을 견디기가 어렵다. 시간도 창조되었기에 인간의 삶을 시간으로 재창조로 채우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과 시간 사이에는 기다림이라는 간격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삶은 자신의 인생을 텍스트로 삼으며 자신의 삶을 무대화 시킨다.
그러므로 인생은 한정된 시간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다. “하나님께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는 말을 성서에서깨닫게 된다. 지구상의 모든 인생은 반드시 주어진 ‘지금’이라고 지내는 시간으로 아침에 날이 새어서 부터 저녁에 어두워질 때까지인 ‘오늘’이라는 ‘하루’로 사는 “시간”밖에 살 수 없다. 하루만 주어진 시간에도 인생에게 “영원”한 시간을 살라고 하신 성서의 말씀이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라는 하늘의 약속이 늘 항상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믿음으로 신앙하게 한다. 신앙은 인간 존재의 특이성에 기인한다. 인간은 여타 동물과 달리 단순히 존재할 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자의식을 지닌 특별한 존재다. 인간이 이런 특성을 지니게 된 것은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의식을 지닌 존재,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 적어도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이후의 일인 것이다.
여하튼 인간은 자연계에서 존재와 의식, 몸과 마음, 육체와 영혼이라는 이중구조를 지닌 특이한 존재다. 이러한 특이 구조로 말미암아 인간은 주위 환경에 밀착해서 사는 동물과 달리 초 자연환경을 의식하고 사는 존재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삶의 환경은 정해진 서식지에 순응하며 사는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넓어졌다. 인간은 자연계의 예외적 존재, 어느 정도 자연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다. 그러나 반면에 인간은 바로 이러한 특이성 때문에 불안한 존재이기도 한다. 모든 인간다운 활동과 업적이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이 자유로 인해 인간은 자연에서 예외적이고 부적합한 존재가 되어서 방황하고 고민한다. 자연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인간만이 죽음의 위험이 닥치기 전부터 죽음을 의식하고 불안을 느낀다. 인간의 이러한 부적합성에서 오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이라고 부른다. 자기 존재의 결핍과 불확실성, 무상함과 취약성의 자각에서 오는 불안이며, 믿음과 신앙은 바로 이러한 인간 존재의 특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앙은 나 자신을 벗어나 초월적 실재인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의 자세 내지 상태며,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끈과도 같다.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함께, 성서가 전하는 사건들이나 예수라는 한 인격의 삶과 행위, 특히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로 믿고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신앙이다. 여기에서 분명해야 할 것은 세상의 창조주이며 역사의 주인인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들을 전개시키고 있음을 알게 한다. 우리말의 ‘한결같다’ 국어사전의 뜻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똑 같다’. ‘여럿이 모두 꼭 같이 하나와 같다’라는 의미가 있다. 여전히 하나같은 믿음으로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우리의 믿음이 한결같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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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천 년같이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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