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모순(矛盾)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나 이야기를 일컫는 표현으로 모순이라는 말을 씁니다. 모는 창이고 순은 방패인데 옛날 창과 방패를 팔던 장사꾼의 어이없는 호객 행위에서 비롯된 고사 성어입니다.
세상의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 그리고 세상의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는 방패 그렇다면 이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떤 결과를 낳을까요?
앞뒤가 맞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지난번 교황의 방문으로 천주교의 순교자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긍정적으로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한 가지 모순은 그 주인 공격인 124분의 순교자들의 순교 이유와 그 종교의 지금 교리입니다.
윤지충 순교자는 정약용선생의 외사촌으로 종교에 입문한 후 모친상을 치르는 과정에서 고발당하고 옥고를 치르고 순교한 분입니다. 그의 잘못이라면 모친상을 치른 후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로 순교한 이를 순교자 라 일컬으며 추앙 하는 행사를 치르면서 왜 지금은 지방은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제사 문제를 허용하는 것일까요?
진리가 시시 때때로 변할 수 있는 것일까요?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신앙고백이 지도자의 명령에 의해 바뀔 수 있는 것인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모순 입니다. 그 길이 조금 편리 하다 는 이유만으로 모순을 진리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따라 가시겠습니까? 모순은 거기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 당시 대통령은 현장을 찾아와 유족들 앞에서 언제라도 찾아오면 만나 주겠노라고 약속하고 눈물까지 흘리는 장면 앞에 국민들은 유족과 함께 위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과정을 철저히 조사하여 잘 잘못에 대 한 응징을 하겠다는 데는 온 국민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확한 규명은커녕 약속을 이행 하라고 식음을 금하고 정당한 의사 표시 하는 분들을 불순한 자인 양 몰아가는 현실은 무엇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요?
교계는 여기에서 자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정의에 충실했던 예언자들은 어떠했나요?
악법을 제정하는 자들아! 양민을 괴롭히는 법령을 만드는 자들아! 너희가 영세민의 정당한 요구를 거절하고 내가 아끼는 백성을 천대하며 그 권리를 짓밟으며(사 5:1-17) 그들이 지은 곡식을 거둬가는구나 (암 5:11) 너희의 순례 절이 이 싫어 나는 얼굴을 돌린다. 축제 때 마다 바치는 분향에 냄새가 역겹구나.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여라. (암5:21,22)
여기에 나오는 표상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경신(敬神)례 즉 순례절과 축제의 기능은 강물과 개울이 넘쳐 흘러 그 땅 에 풍년이 오고 생활이 풍성해 지기를 비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의와 공평을 강물과 개울에 비김으로써 아모스는 정의가 없이는 인생 전체가 메마른 것임을 야훼의 이름으로 시사합니다. 이 야후가 말하지 않더냐? 법과 정의를 실천하고 억울하게 착취하는 사람들을 건져 주며 더부살이와 고아와 과부를 괴롭히거나 학대하지 말고 이곳에서 죄없는 사람을 죽여 피를 흘리지 말라 (렘22:3-4)
오늘 아침 성경을 일고 묵상하는 시야에 들어오는 말씀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는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목소리는 높이지만 얼마나 이 말씀에 충실 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주여 나의 삶속에서 모순적인 요소를 제거해 달라고 기도 하였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진리는 변함이 없는 법 진리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모습을 주님은 보시기 원하시리라는 확신이 떠오릅다. 한국교회가 이 모순 앞에 부끄러움이 없을 때 교회의 희망은 결코 뜬 구름을 잡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모순(矛盾) - 이선규목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