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대림절은 때를 알게 한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메시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믿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면서 그의 삶을 따라 살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가 가셨지만, 세상은 얼마나 변했는가? 특별한 역사적 지식이 없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의 획기적인 기회를 열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삶이 구원받은 사람들의 삶인가?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세상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과 얼마나 가까운가? 지금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실로 하나님의 구원과 멀리 있는 것 같다.
교회력은 기다림의 절기인 대림절부터 시작한다. 마침 연말이기도 하여 한 해 동안의 삶을 돌아보면서 예수님의 오심과 새해를 기다리면서 살려고 한다. 지금도 흘러가는 세월이라는 일정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을 번갈아 가며 살아가고 있다.
시간을 의미하는 두 가지 용어 중에서 크로노스(Chronos; 시간)는 일반적 흐르는 시간을 의미하고, 카이로스(Kairos; 때)는 그 시간에 의미를 부여한 시간(기회), 적절한 시간, 질적인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적극적인 시간으로 비록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오는 것이지만, 카이로스 시간은 특별한 의미를 두고 삶에 직면하는 시간이다. 내 삶에서 카이로스를 만드는 것은 일정하게 주어지는 시간을 당당하게 맞서 자신의 원하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는 '때'(시간)를 알게한다. 그리하여 카이로스는 그 목적을 실행하고 이루는 때를 알게 한다. 그래서 때는 기다림에 살게 한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오늘의 교회는 대림절에 경건하고 금식하며 구세주 기다림에는 그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러기에 흥청거리는 축제의 딱한 분위기만 난무하다. 삼가 해야 할 기독교의 모습도 보게 한다. 특히 대림절이 엄숙한 성격의 절기임을 이 절기를 나타내는 예절적인 색깔이 자줏빛임을 보아도 알게 한다. 2천년의 예수 오심의 약속으로 준비하고 기다림의 그 기대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 오심의 약속의 실현은 기정사실이며 하나님과의 약속이며 생명을 받는 그리스도의 오심이기에 그가 앞으로 오실 재림의 삶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오신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자기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심이었다. 자기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신 예수는 사람이 되어 낮은 자리를 취하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순종함으로 자기를 내어 주심을 보게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신 예수는 자신을 비하(卑下)시켜 사람이 되셨음을 알게 한다.
예수의 이 마음은 ‘비움’이다. 이 마음은 욕심을 비우고 편견을 비운다는 말이다. 비우지 않는 욕심이나 편견은 마음에 벽을 치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약속은 지대한 것이며 절대적이며 한 번의 선택이 영원한 약속이기에 결코 소홀할 수가 없다.
우리는 예수 탄생 때 나사렛 사람들의 태도를 보아서 안다. 매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땅에 태어났어도 그들은 무심코 지나쳐 버릴 뿐만 아니라 나사렛에서 무엇이 나겠는가? 하고 회유하고 말았다. 이러한 강퍅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지엽적이고 고정적인 고정관념 때문에 준비와 기대를 갖지 못하고 오시는 예수에 구원의 약속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오늘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오신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자기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심이었다. 자기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신 예수는 사람이 되어 낮은 자리를 취하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순종함을 보게 된다.
누가복음은 하나님께서 400여 년간 침묵 하시다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약속하신 때를 기점으로 하여 사건을 전개시켜 나가고 있음을 보게 한다. 여기서 누가의 관심은 예수의 탄생과 생애가 1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이었는가를 알게 함이라 생각한다. 당시 사가랴의 기도는 이스라엘의 구속하실 자의 오심에 대한 간구였다. 따라서 천사가 전하여 준 ‘좋은 소식’은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게 된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녀가 구주의 오심을 전파하기 위한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이 누가의 이야기는 구원사의 하나의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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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은 때를 알게 한다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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