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새 하늘과 새 땅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새해에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회복해야 한다. 죄악으로 오염되거나 타락하지 않고 새로운 질서에 의해 새롭게 창조될 온전한 세상(계 21:1), 이 새로운 세상은 종말에 나타날 것인데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성취될 것을 그리스도인은 믿는다.(마19:28; 벧후3:13; 계21:1-17).
이에 따라 현재 인간이 살아가는 타락하고 부패한 우주 만물은 소멸되거나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회복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세상(우주)이 나타나게 된다. 이 세상은 만유의 회복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하나님의 주권의 완전한 회복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구원받은 자들이 장차 들어가 살게 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임을 우리는 믿는다.
모든 생명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살아간다. 한 생명의 일생은 나서(出生), 살다가(存在), 죽어가는 소멸(消滅) 등 3단계로 간다.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은 죽음으로 인해 불멸의 영혼은 육체로부터 분리되며 알려진 과정을 거쳐 지옥으로 가거나 종말이 올 때 까지 일종의 기다림의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이 그리스도교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미래의 상황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주장을 말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예컨대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나님은 세상의 시작과 종말의 주인이라는 점을 밝힌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세상 사람들은 생명사상의 관점으로 이 생명은 영속적인 살림살이의 순환으로 규정한다. 이 삶과 죽음은 또 다른 역할 또 다시 시작하기 위해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것 생명의 순환과정으로 이해한다.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미래의 상황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주장으로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이시며 이 세상의 시작과 종말의 주인이라는 점을 밝힌다.
성서는 시간의 시작과 끝은 아무도 모르며, 영원부터 영원까지를 시간이라 일컬는다. 시간은 영혼 안에 존재하며 영원히 존재하며 진행한다. 영원은 무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는 개념이다. 시간의 시작과 끝은 영원이다. 그리하여 흔히 말하는 순환도 아니고 직선도 아니다. 순환과 직선을 포함한다. 창조와 종말로 이어지는 직선상의 시간을 크로노스 시간이라 한다면 ‘영원’이 ‘시간’ 안으로 침투해 들어온 사건(event)을 만드는 것이 카이로스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인성과 신성을 인격 안에 동시에 갖고 계신다. 그리스도교의 부활은 필연의 역사로 운명 지워진 인류의 역사를 짊어진 카이로스 시간을 알게 된다. 이는 필연의 역사를 뛰어 넘어 영원으로서의 시간의 약속을 구원의 가능성으로 알게 한다.
전도서는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고 이 세상에 새것이 없음을 토로했다. 더구나 시간에 의한 새 것은 없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시간이 앞을 간다고 생각지 않고 뒤로 간다고 생각한다’. 즉 시간은 그대로 있고 사람이 자꾸 뒤로 간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인의 의식 속에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 없지 않다. 그 예를 든다면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한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는 뜻일 것이다. 시간 자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옛 것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것은 시간과 함께 낡아진다. 새 것이 아니라 낡아지는 것이며 후퇴하는 것이다. 썩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똑같은 사실을 두고도 정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다.
즉 어린이들은 설날이 오면 한 살 더 먹었다며 손가락을 꼽으며 기뻐하지만, 어른이나 노인들은 지금 나이에 한 살 더 얹어야 한다는 사실에 슬픔을 금치 못하여 심지어 덧없이 흐르는 세월에 허무와 두려움으로 흘러가는 시간으로 세월(歲月)을 느끼게 된다. 결국 시간은 그가 어떤 뜻으로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새로운 것과 새로운 경험이 있어질 뿐이다.
본문 요한계시록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곧 새롭게 하는 자에게 새로움이 있는 것이지 그 자체가 새로워져서 새롭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개념을 갖고 있다.
그 첫째가 변화이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요 둘째는 미래지향적 변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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