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양심과 영혼이 사는 삶


지난 한 해동안 우리는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세우며 거두는 일로 바삐 살아왔다.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며 썩어질 것만 위한 일로 질주하며 열심히 살아왔다. 마치 “노아가 방주에 들어갈 때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다(눅17:27). 이미 노아 방주의 삶의 형편은 온 인류가 살아 온 것에 대한 심판의 사건으로 첫 형편을 우리에게 거울처럼 보여 주는 교훈이 된다. 이 일이야 말로 지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과 닮아 가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관계를 이루는 공동체로 창조되었다. 인간의 양심은 자아 중심적 고립이 삶을 파괴시키는 것에 대항하여 싸운다. 인간의 양심은 유기체적 연계성을 끊어버리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한다. 양심은 생명의 끈이 잘릴 때마다 상처를 받는다. 양심은 모든 부조화를 충격적이고 치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삶의 일치를 요구하는 것이 바로 영혼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사람은 무엇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람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요 삶에 대한 답이다. 신학이나 과학, 철학, 문화, 인류학의 기본적인 물음으로 인간의 내적인 구조와 가치에 대한 의문으로 그동안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 온다. 여기에 인간의 삶의 구성 요소는 무엇이고 사람은 어떤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가? 여기에 일반적으로는 ‘영혼(靈魂)’과 ‘육체’의 두 부분으로 나누기도 하고 ‘영’과 ‘혼’, ‘육체’의 세 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인간은 물질적 요소인 ‘육체’와 비물질적 요소인 ‘영’ 그리고 ‘혼’도 그 구성함을 말한다(창2:7, 마6:25, 고전5:3,5). 이는 창조시 혹은 잉태시부터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으며 죽음을 통해서만 갈라진다. 이는 인간의 마음과 정신, 혼이라는 것은 영혼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영혼의 한 속성으로 보며 혼을 인간과 동물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적용함으로 ‘혼’과 ‘영’이 동일한 표현으로 보여 준다(전3:21, 사42:1, 렘9:9).
다만 인간의 영, 혼은 짐승의 ‘혼’과 질의 차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짐승의 혼에는 단순한 의식, 기억, 정신은 있지만 하나님의 속성인 고도의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없으며 하나님을 의식하는 이성과 양심과 불멸성은 없다. 여기서 아는 것은 사람에게는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불멸의 영혼이 있고 이 영혼은 육이 죽어 썩어 없어질 때에라도 죽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는다는 믿음을 가진다.
우리는 일찍이 죄 많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비극적 삶을 대변하는 명작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서 그 명작으로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로 삶의 각 층을 보게 한다. 햄릿(Hamlet)은 하나의 복수비극으로 주인공인 왕자의 인간상으로 사색과 행동, 진실과 허위, 양심과 결단, 신념과 회의 등의 틈바구니에서 삶을 초극해 보려는 한 인물의 모습이 영원한 수수께끼처럼 제시되는 삶을 본다.
그리고 오셀로(Othello)의 작품에서는 흑인 장군인 주인공의 아내에 대한 그릇된 애정으로 그 악역을 보게 하며 이아고(Iago)의 간계(奸計)에의해 무참히 허물어지는 삶의 과정을 그린 비극이나 사람의 심리적 갈등보다는 인간적 신뢰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삶의 이면을 보게 한다. 그리고 리어왕(King Lear) 작품에서는 늙은 왕의 세 딸에 대한 애정의 시험이라는 설화적(說話的) 모티브를 바탕으로 깔고 있으나 혈육 간의 관계의 파괴가 우주적 질서의 붕괴로 확대되는 과정을 그리는 비극을 알게 한다.
네 번째 작품으로 맥베스(Macbeth)에서는 권력의 야망에 이끌린 한 무장(武將)이 왕위 찬탈과 그것이 초래하는 비극적 결말을 보게 한다. 이 세상의 삶은 죄에 의해 양심의 고통을 당하는 생할을 한다. 양심의 고통과 두려움은 하나님의 은총과 평강에서 용서를 받는다. 마치 빚진 자가 모든 빚을 탕감 받고 그 채무로 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과 같은 진리의 길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에게 삶의 영이 살아난다.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죄 씻음 받는다”(엡1:7)는 말씀이 그렇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고 말씀은 전한다. 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적 아이로 새로 태여 남을 말한다(벧전2:2). 육의 소욕은 옛사람으로서 껍질에 불과 하다. 혼에 의한 몸의 소욕일 뿐이다. 혼 (마음)에 의해서 몸은 움직인다. 그리하여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란 주 앞에서의 내가 죽어질 때 성령님이 주시는 영으로 자라서 거듭난 삶을 살아야 한다. “영에 소욕과 ,육신에 소욕은 절대로 함께 할 수 없다. 이제 새해 한해는 “양심과 영혼이 사는 삶”으로 사는 한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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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과 영혼이 사는 삶 - 배성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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