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바울이 유럽에 복음을 전한 이후에, 다시금 세 번째 복음전도를 위한 여행에서, 에베소 윗 지방에 도착하였을 때이다. 거기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그룹을 만나게 되었는데, 예수를 믿는다면 저들이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것들이 결여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묻자, 우리는 성령에 대하여 들은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되물었다. 당신들이 세례를 받은 것 같은데, 그러면 어떠한 세례를 받은 것입니까? 하고 묻자, 저들은 세례요한의 세례만을 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저들에게 자신과 자신들의 동료와 함께 항상 숙지하고 다니는 ‘바울의 복음’을 명료하게 가르쳐 주고는,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받아들인 저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성령을 받도록 간구하니, 저들도 비로소 성령을 받음으로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 교계는 오늘 우리한국에 복음을 받은 지 130년을 넘기고 있다. 해방 이후부터 교단이 분열하고 여러 교단들이 파생되면서, 어떤 교단은 ‘방언’을 교단의 간판 언어로 띠워서, 방언을 앞세워 신도들 모두가 방언을 하게 하여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되었고, 자신이 구원받았고, 온갖 죄에서 용서 받았음을 확신시켜 주었다. 한 교단은 ‘언제 구원을 받았습니까?’ 라는 질문을 함으로서 인격자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을 언제, 어떻게 받았음을 체험적으로 확신시켜줌으로써 구원 받은 자임을 공고히 하였다. 이 뿐 아니라, 어느 한 단체는 예수를 믿는 자에게, 그의 몸 안에 지금까지 왕 노릇하던 귀신의 실체를 제거함으로써, 악의 실체가 그에게서 떠나갔음을 확실하게 매듭을 지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교정에서 전도하던 그룹은 4영리를 가지고서, 확실하게 그들의 인격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심으로 인해서,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시작하도록, 그리스도인의 삶을 개성 있게 특징 지워서, 그리스도인의 본질과 자세를 명료하게 하여 주었다.
어디 이뿐이랴, 휴스턴의 S교회는 모든 신도들에게 새신자생활을 교육시켜서, 예수를 영접시키고 성령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여서, 신도 스스로의 위치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여 주었다. 교회가 부흥하여서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갖는 교회들 중에, 강남의 M교회는 한설교자가 무려 30년 넘도록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인도하고 있고, 또 O교회는 일대일성경공부와 QT를 통해서 매일 성령과 동행하는 체험을 하도록 신도들을 이끌어주고 있다. S교회도 평신도성경공부로 복음과 구원은 물론 더 나아가서 성령체험을 하도록 하고 있다.
베드로가 모여온 군중들에게 선포하기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28,29)’ 하였다.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은 자의 영적 확신은 성령을 선물로 받음으로서 공고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단이라고 규정된 집단들을 보면, 저들에게 확실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들이 받는 교육이 뚜렷하고, 그에 따르는 체험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저들이 한 곳에 모여 5일 정도의 수련회를 거치면 아무도 흔들지 못하는 확고함이 선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콘스탄틴 대제의 종교자유선언 이후 빼앗긴 것이 있다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을 소홀히 한 것이다. 성령이 이성으로써 규명되기가 불가하다 하여서, 성령의 역사나 인도하심을 소홀이 여기게 된 것이었다. 우리가 속는 것이 있는데, 종교개혁 이전, 성당 안에 들어갈 수 인원이 제한되다 보니, 당시 지식을 독점하고, 권력을 독점하여 온갖 혜택을 누리는 5%의 특정 계열만이 미사에 참석하였음을 인지해야 한다. 저들은 실제로 기독교 국교 화 선언과 동시에 신자가된, 그 사회에서 5%에만 속하는 특정한 종교인들이었다. 저들은 이미 스토아적인 철학적 지식에 의한 맞춤설교를 듣는 특별한 계층이었다.
오늘에 와서 우리가 간과한 것은, 교회를 중요시하고 자신의 교회에 만 집착하다가 보니, 성령의 임재와 성령께 복종하는 신도의 개별적인 삶이 교회론적 성령론에 갇힌 상태가 된 것이다. 교회론적인 성령론에 제한을 받으면 스토아적인 패러다임에서도 벗어나질 못한다. 130년을 넘어온 우리 한국교회는 이제라도 세월호처럼 되는 현상에서 벗어나고, 성경이 말하는 성령론적인 교회론으로 바로서야 한다. 바울은 그가 전하려는 선물을 말 할 때에, 복음과 성령의 선물과 신도의 인격적인 성령의 열매를 분리하지 않았음을 주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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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교회, 행복한 세상-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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