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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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사토 마사루(佐藤優,1960-)는 신학을 공부했지만 외교관이 되어 러시아의 일본 대사관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각종 매스컴을 누비는 논객이 되어 있다. 최근 <문예춘추(文藝春秋>의 의뢰로 중국, 한국 러시아의 역사교과서가 일본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수험공부 이외에는 아무 짝에도 쓸 모가 없다’는 결론부터 앞세운다. 거대한 연표 만이어서 읽어가기에도 힘이 든다 했다. 그것은 기억과 그 재생만을 중시하는 일본의 엘리트 양성시스템이 후진국 형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며 너스레를 떤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교육은 한 해 동안에 통사를 공부하는 것으로 그치는 암기중심 교육으로부터 하루 빨리 탈피해야한다고 충고한다. 스토리를 중시하는 보다 많은 분량의 교과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면서, 역사교과서를 러시아와 같이 수년에 걸쳐 배우도록 개편하는 것이 이제부터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와 사고를 몸에 붙일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 될 것이라 역설한다.  

 반면에 중국, 한국, 러시아의 교과서에는 독자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읽어가노라면 흥미를 느낀다면서 각국의 역사관과 사고방식의 포인트를 간단명료하게 짚어준다.      

  러시아와 중국은 세계의 그 어떤 나라 사람과도 대화가 가능한 철저한 리얼리즘과 보편성을 지닌 역사를 가르치고 있지만, 한국은 독자성이 강해서 국제적으로 통용할 수 없는 안으로 향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면서, 각론에서 한국의 역사교과서를 ‘테러리스트 사관’에 따르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가 놀란 것은 한국 역사교과서에 쓰이고 있는 역사관이라 했다. ‘이 나라의 역사관은 일본에게도 위협이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안 될 것’이라면서. 그 이유는 ‘세계 교과서 중에서도 극히 드문 테러리스트 사관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 “우리나라의 선조들은 여기까지 밀리고 밀려서 테러를 감행할 수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노라” 하는 역사이해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예상과는 달리 북조선과의 친화성이 강하게 느껴진다면서 북조선의 역사교과서보다도 더 과격한 내용이 되어있다고도 언급한다.

  그가 참고한 것은 2012년부터 2014년에 걸쳐 사용된 고교수준의 교과서를 편집부에서 번역한 것과 아카시(明石)서점이 출판한 ‘세계의 교과서 시리즈’였다는데, 구체적으로 우리의 어떤 교과서를 자료로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한 곳에서 ‘지학사’의 고등하교 한국사에서의 인용이라는 주석을 통해서 짐작만 해볼 뿐이다. 국내에서도 서로 극명하게 대립하는 역사관을 표명하고 있는 터라 섣불리 다룰 수는 없겠으나, 그가 정리한 내용은 대충 이렇다.

 한일합병 전후의 기록에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테러리스트하면 안중근이 떠오르지만 그에 대해서는 오히려 선명하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 왜냐하면 “장인환과 전명운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의 침략을 미화한 스티븐슨을 저격했고, 안중근은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다 (1909).” “박열은 1923년 일본에서 국왕의 암살을 꽤했고, 조명하는 1928년 대만에서 일본의 황족을 칼로 습격하는 의거를 감행했다.”는 기록. 그리고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가 세상을 놀라게 했고, 특히 중국인에게 강한 인상을 심었다.“등의 글을 들추며 ‘끝도 없이 많은 테러리스트를 열거하고 있다’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이토 히로부미는 초대수상이라 해도 국가의 원수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옥(玉)’ 일본의 국가원수인 천황이나 황족의 목숨을 노린 자가 한국 교과서에서는 가장 위대한 투사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에 성공한 안중근보다 천황암살에 실패한 테러리스트에 대해서 보다 자상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은 천황 암살이라는 동기만으로도 주목을 받고, 수단이나 결과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도 가한다. 문명국에서 통상적으로 테러에 의해서 현상을 타파하려는 시도를 칭찬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이 교과서에서는 ‘우리나라의 테러리즘의 역사는 이만큼 오래된 것이다’하는 넋두리 말고는 별로 배울 것이 없다면서, 이스라엘이나 아일랜드에서도 이러한 교육은 하지 않는다고 침을 놓는다. 한국문화는 한(恨)이라지만 교과서도 분노의 충동으로만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최종적 평가였다.  

 enoin34@n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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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교과서는 “테러리스트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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