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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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하였다. 목사님의 첫 설교는 너무도 은혜롭고 감동적이었다. 성도들은 기쁨에 들떠 목사님의 손을 잡고 많은 은혜를 받았다며 앞으로도 이러한 설교를 자주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 후에도 계속 같은 본문에 같은 설교만 반복하였다.
이를 궁금히 여긴 성도들이 목사님께 물었다. ‘아니 목사님, 설교 밑천이 그것밖에 없습니까?, 아니면 우리를 놀리시는 겁니까? 어째서 매번 똑같은 설교만 반복하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닙니다. 설교 주제야 성경 속에 무궁무진하게 있지요. 하지만 성도님들이 그토록 은혜로운 설교를 듣고도 아무 변화가 없으니 같은 설교를 계속 할 수 밖에요. 그러니 은혜로운 설교를 듣고 싶다면 삶에 변화를 보이세요. 그러면 저도 그 진도에 맞추어 설교를 바꾸어 볼게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구주로 믿고 진정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가 되었을까? 입으로는 주님을 시인하면서도 주님의 말씀과 계명대로 실행하지 않는 자들이 참 많은 것 같다. 그들에게 종교가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서슴없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며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한다. 과연 그들 중에는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지식이나 신학적 지식이 탁월한 사람도 많다. 성경을 줄줄 외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지식이 곧 믿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성경 말씀은 단지 지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지식으로만 알뿐 실천이 없다면 그 지식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 지식을 악용하면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하여 신학자 존 베일(John Baillie)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자보다 더 크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위험이 있다’라고 말했다. 많은 이단들을 볼 때 매우 타당성 있는 말이다. 
고로 우리는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이론적으로 따질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이론이 매우 합리적인 것도 있고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같다. 인간의 모든 이론은 복음 앞에서 깨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견고한 성 여리고가 이론적으로 무너지게 되어 있었을까? 무너져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이론적으로 따진다면 오히려 그것은 견고해야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합성에 무너졌다. 파괴되어도 철저하게 파괴 되었다. 마찬가지로 복음 앞에 인간이 세운 이론도 이와 같다. 비단 인간 이론만 아니라 종교이든지 교만함이든지 무엇인지 좋다. 복음을 대적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무너지게 되어 있다. 복음이란 그렇게 강력한 것이다.
헌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오늘 날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들이나, 장로들이나 일반 성도를 보자. 그들은 그토록 많은 설교를 하거나 듣고 많은 성경공부를 했는데도 거의 변화가 없다. 기독교인의 수가 일천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다섯 명 가운데 한명은 기독교인 셈이다.
외국에서는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이십 퍼센트가 넘으면 그 국가를 기독교 국가로 간주 한다. 그 기준에 보자면 우리나라도 기독교 국가인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악과 범죄가 증가하고 부정부패와 불법이 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목회자와 장로들과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세상과 타협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적당히 하나님도 섬기고 동시에 세상과 짝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중생활은 위험하다.
이러한 사실은 역설적으로 역사상 가장 지혜로웠다는 솔로몬 왕이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는 부친 다윗을 이어 왕위에 오르자 성전을 지어 봉헌함으로써 하나님께 충성을 하였다. 한편으로는 왕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세상적인 방법도 동원하였다. 즉 그는 이방 여러 왕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세상적인 방법도 함께 동원하였다. 즉 그는 이방 여러 왕들과 환심을 사기 위해 정략결혼을 하며 우상을 끌어들이는 등 세상과도 짝하는 방법을 서슴치 않았다(왕상 11:1~7).
하지만 결과는 그가 의도했던 바와 정반대였다. 곧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오히려 생존 시에 여러 이방의 공격을 받았고 그가 죽자 결국 나라마저도 두 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는 두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좇는 자의 결국을 보여 준다. 우리는 알아야한다. 믿음도 중요하고 기도도 중요하고 지식도 중요하지만 목회자들과 장로들과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의 덕목은 믿음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형통함과(수 1:8) 풍성한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눅 5: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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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사님의 변화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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